감상주의(感傷主義)와 인간의 삶
감상주의(感傷主義)와 인간의 삶.(sentimentalism)
황우 목사 백낙은.
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해왔다. 한때는 고사목 뿌리로 조각(彫刻)하는 것을 취미로 했는데, 다양한 모양이 나오기 때문에 나를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다가 또 수석을 수집하는 데 몰입했었다. 그때 모아둔 수석이 300여 점은 되리라 여긴다. 그러나 전시할 장소가 없어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다음엔 서예를 하기도 하고, 십자가나 골동품 촛대를 수집하는 일에 열을 올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생명이 없는 것이어서 얼마 가지 않아 싫증이 나곤 했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분재를 하기로 마음먹고 분재를 만드는데 온갖 정성을 쏟았다. 하나의 분재를 만들려면 소재(素材)를 사서 분에다 올리고, 철사 감기를 해서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수간(樹幹)을 바로 잡아야 한다. 갑자기 무리한 힘을 가하면 죽어 버리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철사를 감아주면 놀라운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래 전에 내가 분재전시회를 했는데, 그 전시회를 본 어떤 여성이 철사를 감아놓은 분재를 보고, 목사님이 너무 잔인하다면서 우리 교회에 등록하지 않고, 다른 교회로 가서 등록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내가 잔인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자연을 직접 대하는 것이 백번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좁은 공간에 자연을 끌어들여 감상하는 것이 미관상으로나 정서적으로 매우 좋기 때문에 분재를 하거나 수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기 좋은 분재를 만들려고 하면 철사 감기는 필수적이면서 보편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여인이 개인적으로 언짢은 느낌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지나친 감상주의 빠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감상주의란 지적(知的)인 면보다 감상(感傷)을 강조하는 사상을 말하는데, 영어로는 센티멘털리즘(sentimentalism)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감상주의에 빠지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보다는 감정적인 면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문학에서도 슬픔이나 연민 따위의 감상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태도나 경향을 감상주의 문학이라 말하고, 감정적 감수성을 매우 중시하는 예술의 경향성을 말하기도 한다. 본래 이 감상주의는 계몽주의(啓蒙主義)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으며, 기본적으로 인간의 태생적 도덕성과 감성을 논리와 종교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지나친 감상주의 영향을 받은 시나 수필, 그리고 음악이나 영화가 많은 사람을 싫증이 나게 하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사람이 본래의 감성을 무시하거나 무자비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지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예(例)라 하겠지만 옛날엔 사람의 몸에 피를 빨아 먹으며 기생하는 이가 많았다. 스님들도 예외는 아니었나 보다. 스님들이 살생을 하지 않으려고 그 이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내복을 벗어서 밖에 내놓아 이가 얼어 죽게 했다고 들었다. 우리가 어릴 때도 우리 부모님은 자주 내복을 밖에 내놓곤 했었다.
그리고 옛날에는 소의 코를 꿰어서 농경에 이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오물이 가득한 우리에 소 돼지를 길러서 그 고기를 인간의 식탁에 올리는 것이다.
요즘 살충제 달걀로 말미암아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지만, 닭은 조그마한 닭장에 갇혀서 알만 낳다가 죽는다. 목줄에 묶인 개가 한 평생 개집에 갇혀 살다가 죽는다. 각종 과일나무도 그냥 내버려 두면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퇴화하고 만다. 그래서 좋은 과일을 수확하기 위해서 때로는 순을 자르기도 하고, 가지를 이리저리 잘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지나친 감상주의자들이 이런 것을 안다면 어떻게 고기나 과일을 먹을 수 있겠는가! “너도 세상에 살려고 나왔으니 같이 살아가자”고 하면서 이도 잡지 않고 각종 해충도 죽이지 않는다면 아마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살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 감성을 무시하거나 잔인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지는 것은 금물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양심을 무디게 하여 동식물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이 좌로나 우로 치우지지 않고 세상을 사는 것이야말로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