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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이야기.

삼락 2015. 5. 18. 15:41

* 고추이야기.

                                               황우 목사 백낙원.

작년에 우리가 고추를 1200포기나 심었었지만 고추농사에서 별 재미를 못 보았기 때문에 올해는 고추를 약500여 포기만 심었다. 고추라도 좀 많이 심어서 수입을 좀 볼 양으로 많이 심어 보았지만 허탕을 친 고추농사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필을 들었다.

 

사실 농촌에서 돈이 되는 작물을 경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용작물을 재배하여 수익을 올리는 분들도 있지만 많은 투자에 모든 여건이 맞아야 다소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할 돈도 없고 그만한 지식도 없으며 판로를 개척할 수 없는 농부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서 이 곳 농촌 사람들이 고추를 많이 심어 놓고도 삼복더위에 고추를 어떻게 다 따고, 어떻게 다 말릴 것인가 하고 걱정들이 태산이다. 물론 이제는 고추 건조기가 나와서 좋지마는 우리 형편에 고추 조금 하자고 건조기까지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차례 태풍이 지나 갔음에도 고추가 잘 되어서 여간 많이 달린 게 아니었다. 그래서 고추 말리기가 너무 힘들 것 같아 풋고추를 시장에 내다 팔기로 마음먹었다.

오후 내내 고추를 따고 밤늦게까지 선별작업을 하고 보니 박스로 여섯 박스였다. 생전 처음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가 판다는 것 때문에 가슴이 설레어 밤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새벽 4시 쯤 자리에서 일어나 고추를 싣고 포항 농산물 공판장까지 20Km를 달려갔다. 오늘 공판장에선 우리 고추만큼 좋은 고추가 없었다.

시간이 되어 공판을 한 결과 10K 한 상자에 9.000원으로 전부 54.000원인데, 그 중에서도 수수료를 떼고 내 손에 들어온 것은 49.300원 정도였다. 그것도 개당 1천 원 정도의 박스 값과 운임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셈이다.

농약 값과 종자대 등 농비(農費)와 얼마 동안 농사하느라 진한 땀 흘려가며 노력한 대가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것이었다.

 

공판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중간상인들은 자기들만 아는 수신호로 손가락 몇 번 놀리고 보는 이득이 얼마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 같은 손가락인데 농부들의 손은 일 년 내내 놀려도 들어오는 것이 별로인데, 중간상인들의 손가락은 몇 번만 놀리면 농부들보다 몇 배의 이익을 보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소비구조 속에서는 생산자는 언제나 희생제물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집에선 아내가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아내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곡식을 팔러 장에 갔다가 장돌뱅이들에게 다 털린 옛 촌로처럼 내가 괜히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제 풋고추 판매 생각을 바꾸어 고추를 다 익혀 붉은 고추를 건조시켜서 팔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아내는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며 고추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아내를 보는 순간 울컥하고 치밀어 아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우사로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태양초를 선호하지만 말이 태양초지 장마라도 지면 속절없이 다 썩혀 버리기 때문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어쩔 수 없이 가정용 소형 건조기 하나를 사고 말았다. 이래저래 농비(農費)가 추가 되고 보니 일 년 내내 농사를 해도 그 경비가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주렁주렁 많이 달려 잘 자라는 고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농작물들을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얼마 안 되는 것이긴 하지만 가을의 추수를 기다리는 희망이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생산한 고추나 농산물이 비록 헐값에 팔리지만 누군가의 식탁에 올라 맛있는 반찬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쓴웃음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