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밥이 넘어 가더라.
그래도 밥이 넘어가더라. // 황우 목사 백낙원(은)
오늘 오전에 요양병원으로부터, 아내가 열이 난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허용하지 않다가 어제 처음 비대면 면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면회를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내가 면회를 하면 아내가 더 나를 잊지 못하고, 자꾸만 기다릴 것 같고, 보고 싶어 견디기가 더 힘들 것 같기도 하며, 나도 아내를 보고 나면 견디기가 더 힘들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어제 아들과 딸들만 면회를 다녀오게 했다. 어제 아들과 딸들이 면회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열이 난다니 또 가슴이 무너진다. 아들딸들을 보고 나서 더 애잔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열이 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오쯤 되어 딸들이 혼자 식사를 챙겨 먹는 아빠를 대접하겠다고 고기를 사 와서 구워주는 것이다. 한 점을 먹고 나니 목이 메어 더 넘어가질 않는다. 아내는 답답한 병실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어떻게 고기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긴단 말인가?
눈물이 나지만 딸들이 보는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얼른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닦은 다음에 다시 식탁에 앉아서 앞만 보고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딸들도 눈치를 챘는지 코를 훌쩍거린다.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수저를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딸들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딸들도 아빠 마음 아플까 봐 서러움을 숨겨보지만, 감출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무거운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할지를 몰라 안절부절이지만 방법이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주여! 어서 당신이 개입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면서 울부짖어 보았지만, 가슴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조금 더 기다려 본 다음에 병원에 전화라도 한 번 더 해 봐야겠다. 긴긴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2020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