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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을 뵙다
삼락
2016. 9. 4. 20:40
* 남이장군을 뵙다. // 황우 목사 백낙은.
지난 8월 31일 짬을 내어 남이섬을 관광했다. 장장 일곱 시간을 운전하여 찾아갔는데 남이 장군을 뵙지 않고 가면 너무 무례 인듯하여 일부러 장군의 묘역을 찾았다. 물론 이곳 남이섬에 있는 묘역은 가묘라는 설도 있지만, 그래도 그 기상을 받아 가야 할 것 같아서였다.
남이는 태종의 넷째 딸인 정선공주에게서 1441년(세종23)에 태어났다. 1457년(세조3) 17세 때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국방을 책임지는 병조판서라는 중책을 맡았다. 북정이라는 그의 시에서 보는 대로 남이야말로 대장부였다.
北征 (북정)
白頭山石 磨刀盡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頭滿江水 飮馬盡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서라도)
男兒二十 未平國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後世誰稱 大丈夫 (훗날 누가 그를 대장부라 하겠는가.)
그러나 평소에 남이를 시기하던 유자광이 남이가 역적모의를 꾸민다고 모함하고, 더구나 남이의 시조 가운데 '나라를 평정 못하면'이라는 말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바꾸어 남이를 대역 죄인으로 몰았다.
결국 이 일로 남이는 28세의 젊은 나이로 억울하게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 뒤 400여 년이 지난 1818년(순조18)에 억울한 누명을 벗고, '충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