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움"의 미학.
“다움”의 미학. // 황우 목사 백낙은.
우리 말 중에 “~~다움”이라는 말이 있다. 이 “다움”이라는 말은 “무엇 무엇이 무엇 답다”의 명사형으로, 특히 그 직책과 직분에 맞는 사람다움, 또는 아름다움 등으로 쓰인다. 그러므로 이 “다움”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으뜸 가치로 모두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답게 살지 못하고, “이만하면 되었지”라는 생각을 하거나,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쩌자고 장래가 창창한 젊은이가 순간적인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 창창한 일생을 망친단 말인가? 한 발자국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위장전입이니, 탈세니, 성범죄 같은 불법을 저질러, 청문회에서 낙마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미래를 불살라 버리는 것을 보면 장탄식이 절로 난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백세시대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는 65세에 40년 동안의 교역에서 자원은퇴를 했다. 65세에 은퇴를 해도 아직 인생의 1/3이나 남아 있는 셈이다.
은퇴 후 나는 무료하게 노인정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소를 키워 보기도 했고, 70세에 승마를 배워 4년을 넘게 말을 탔고, 칠십오 세에 시와 수필에 등단하여 시집 두 권과 수필집도 네 권을 출판하였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당신은 목사이면서 시인도 되고 수필가도 되었으니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여나 그러한 자만이 생길 때마다 시지프스(Sisyphus) 신화의 “저주받은 신”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약 2년 전에 아내가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을 때, 죽기를 각오하고 2년 넘게 아내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나도 누구의 시중을 받아야 할 망구인데, 식물인간인 아내를 전적으로 혼자 돌보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점에 다다라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요양병원으로 보내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과연 참 남편다운 남편이었으며, 목사다운 목사, 아버지다운 아버지이었던가를 생각하면 등골에 식은땀이 괴인다.
누구나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참 부모다운 부모, 남편다운 남편, 자녀다운 자녀, 스승다운 스승이 되는 것, 즉, 그 직분에 걸맞은 “그 다운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름에 합당한 “그 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라는 개념도, 세상 법이나 성서 법을 어기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되지 못한 것”, 바로 그 직책의 걸 맞는 무엇답지 못한 것이 죄라는 것이다.
내 평생, 참 목사답지 못한 것과 부모답지 못했던 것, 남편다운 남편이 되지 못했음을 후회하면서, 아무리 가슴을 쳐 봐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 앞과 아내, 그리고 나와 관계된 사람들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용서를 빌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 하나도 이루지 못한 미완성의 존재다.
요즘도 내일 다시 해가 뜨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내일 해가 뜨기 전에 내가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얼마를 더 살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사는 날 동안, 어떤 유명 시인의 시구(詩句)와 같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다움”의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