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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가다.

삼락 2016. 7. 5. 16:10

대마도를 가다. // 황우 목사 백낙은.

 

지난 62712일 일정으로 일본 대마도에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다. 선박을 이용하기 때문에 매우 저렴하여 결심한 것이다.

출발 전날은 부산에 있는 막내딸 집에서 자고 당일 아침에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일행을 만나, 출국수속을 마치고 오션플라워 호에 오르니 910분경이었다. 바다의 꽃이라는 이 배가 굉음과 함께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한일해협을 헤쳐 나간다. 잔잔한 바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마치 모세의 기적을 보는 듯 일사천리다. 서로 얽히고설킨 인생문제와 동서의 갈등, 남북의 문제, 한일 간의 문제등도 이같이 해결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1115분쯤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 도착했다. 대마도는 나가사키 현에 속하였는데, 107개의 섬으로 이뤄졌고, 그중에 사람이 사는 섬은 5개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이 대마도는 현재 산이 89%, 농지와 주거지가 각각 약 1%이며 기타는 도로를 비롯한 기간 시설이라고 한다.

 

곧 바로 식당에 가서 현지식(現地食)으로 중식을 했다. 이 한 끼 식사에도 일본 사람의 개인주의 성향과 실용주의 성향이 잘 나타나 있었다. 남에게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성향이 그대로 담긴 개인별 식사가 지급되었고, 그 양도 아주 소량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서구의 대량소비에 맞서는 식사법으로 음식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좋은 방법으로 여겨진다. 중식 후 대마 역사 민속 자료관과 조선통신사 비()가 있는 곳에 가서 관광을 하였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구가와 이에야스가 집권한 후 일본이 조선을 침탈한 것을 사죄하고,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일본이 요청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에 조선은 1609년 이후 13차에 걸쳐 통신사를 파견했는데, 처음 3회까지는 임진왜란 때 강제로 끌려간 조선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후로는 조선의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하고 양국 간 우호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 규모는 약 3~500명 정도였고, , 부사를 비롯하여 학문, 기술, 예술, 기타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골라 보냈으며, 통역관과 시종들까지 포함 되었다. 거기다가 일본 사무라이 호위무사들까지 약 800여 명이었으며, 당시 일본의 1년 예산과 맞먹는 자금이 소요되었고,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서 도교까지 왕복 4.000km나 되는 여정으로 약 8개월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우리 일정에는 은혜교회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교회의 사정으로 취소되었고, 수선사와 팔번궁 신사를 둘러본 후 대마도의 중심 거리를 관광하였다. 이 섬에는 약 3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지만 거리에서 일본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고 한국의 관광객들만 거리에 북적대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전체 모임을 가진 후 대아 호텔에 투숙했다. 호텔이라고 해봐야 우리나라 여인숙만 못한 규모이다. 얼마나 옹색한지 몸집이 큰 서구 사람들은 매우 불편할 것으로 여겨졌다.

베란다의 창문을 열어보니 널따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 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까만 정장을 한 멋진 새 한 마리가 가랑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잔디밭을 유유히 산책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만제키바시 만관교를 관람하였다. 이 만관교(萬關橋)는 상 대마도와 하 대마도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원래 대마도는 상, 하대마가 붙어있던 섬이었는데, , 일 전쟁을 대비하여 군사적 목적으로 육지부가 가장 좁은 이곳에 운하를 만든 것이다.

1897년에 착공하여 1900년에 운하가 완공되었고, 그 인공운하 상부에 다리를 건설하여 상, 하 대마도를 연결한 것이 만관교이다. 이 운하가 있었기에 19055월 러, 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였고 결국 을사늑약과 함께 국권침탈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다음으로 에보시타케 전망대로 갔다. 일명 한국전망대라고도 하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부산의 건물 윤곽도 보이고 거제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어제부터 비가 내리고 흐렸지만, 차츰 날씨가 개여서 멀리는 보이지 않지만 가까운 곳은 아주 잘 보였다. 여기서 360도를 돌면서 둘러보니 멋진 자연경관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어 와타즈미 신사에 들렸는데, 2000년 신화의 주인공들을 모시고 있는 신사인데, 신사로 들어가는 어귀에 도리이(鳥居)라는 문이 있는데 이 문은 인간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 방향이 경주를 바라보고 있어, 한반도에서 넘어온 도래 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이런 신사가 9만여 개나 된다고 한다.

 

신사에 들어가는 입구마다 물통이 있어 물을 한 바가지 떠서 왼손을 씻으면 과거의 죄가 씻겨 지고, 그다음 오른손을 씻으면 현재의 죄가 씻어지며, 그리고 그 물로 입안을 헹구면 잘못한 말로 인한 죄를 씻는다는 것이다. 이런다고 지은 죄가 모두 사라진다면 무슨 걱정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얼마를 가서 일본 면세점 쇼핑센터에 들렀다. 옛날에는 일본에 가면 코끼리 밥통이나 전자제품을 사왔지만 이제는 우리 국내산이 더 좋아져서 살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선물용으로 칼과 도마를 사고, 게르마늄 팔찌가 건강에 좋다고 하여 큰맘 먹고 가진 돈을 다 털어 아내의 목걸이와 팔찌를 샀는데, 우리나라 제품도 좋은 것이 많은데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코스인 미우다 해수욕장을 들렸다. 이 해수욕장은 일본 100대 해수욕장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규모는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해수욕장이었다. 적당한 수온과 아름다운 쪽빛 바다가 정말 아름답고 깨끗하여 가족끼리 와서 얼마 동안 머무르고 싶은 곳이기도 하였다.

 

오후 340분 히타카츠 항을 출발하였는데 부산항까지 49km 정도라 한 시간여 만에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대마도는 특별한 관광 코스는 아니지만, 우리 선조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곳이기에 한 번쯤 둘러보면 좋은 곳이라 여기면서 이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