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배신의 시대를 사는 우리.

삼락 2016. 11. 17. 11:06

배신의 시대를 사는 우리. // 황우 목사 백낙은.

 

세상엔 많은 동식물이 있다. 그 것들이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명을 건 투쟁을 하여야 한다. 동물들의 진화과정을 보면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치타와 같은 동물은 빨라야 살아남겠기 때문에 빠른 발을 가진 동물로 진화했고, 나무늘보와 같은 동물은 느려야 살아남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느리게 행동하는 종()으로 진화한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어떤 동물은 나무 위로 올라가고, 어떤 동물은 물속으로 들어가고, 어떤 동물은 땅속 깊이 들어가서 생존을 이어가는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대나무와 같은 식물은 키가 커야 생존확률이 높으므로 키를 높이고, 민들레와 같은 식물은 땅에 납작 엎드려야 살 수 있으므로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며, 독을 지니거나 가시로 자기를 방어하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여긴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이 세상에서 처세하는 방법으로 어떤 것이 유리할까를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하는 것이다. 대쪽같이 사는 것이 유리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들과 같이 유연해야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기뱀장어와 같은 동물은 자기보호를 위해 무시무시한 전기로 무장을 하는 종()도 있고 다른 무서운 독을 가진 동물도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도 저마다 자연스럽게 색깔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항상 열혈적인 붉은색을 띄우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항상 평화로운 푸른색을 띄우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자기 색깔이 없이 시류(時流)에 맞추어 그 때 그 때 색깔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특별히 요즘과 같이 격변의 시대에는 어떤 잘 못된 선택이 자신의 명예는 물론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시국이 몹시 시끄럽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도 있지만, 사회가 어려울 때 진짜 참 인간다운 인간을 발견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시국이 어려울 때 참 애국자가 나오기도 하고 매국노가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어려울 때 보아야 참 친구를 알 수 있으며,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실세인 문고리 보좌관들을 보면 하나같이 깡패윤리만도 못한 배신의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래서 더욱 그들의 만행이 백일천하에 드러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카멜레온과 같이 간신배 같은 삶의 행태를 후대들이 배울까 걱정이 된다.

 

한때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이 저지르는 비리를 알고도, 온갖 술수를 써가며 옹호하거나 숨기면서 여러 가지 이익을 취했던 자들이, 최순실 국정농단이 완전히 들통이 나니까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는가 하면, 모두 손가락을 주군에게 돌리고 있는 형국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라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참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시대를 배신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당의 한 중진도 내가 박근혜 정부를 잘 지키겠습니다.”라고 부르짖기도 하고, 그 밑에서 지성으로 동조했던 사람이,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박근혜를 탄핵하자.”고 들고 나서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이 바로 낮에는 쥐로 밤에는 새로 변하는 박쥐의 양태라 하겠다.

 

그나마 전 통일부 장관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하여 기자회견을 하면서 정말 사죄드린다.”고 읊조리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잘 못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은폐하려고 하거나 정당화하려 할 것이 아니라 뉘우치고 고치는 것이 더 급선무라 여긴다.

 

나는 과거 민주화 운동 때 깊이 관여했던 사람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지난 독재정권 때 차지철이라는 사람이나, 장세동과 같은 사람은 자기의 주군이 비록 잘 못된 길을 갔지마는 생명을 내놓을 만큼 주군에 대한 각별한 충성심과 의리를 보여 주었다. 오죽하면 이런 불의한 자들이 그리워지겠는가 말이다.

 

사람도 동물로 분류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동물에게는 없는 염치가 있다. 그런데 생존을 위한답시고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염치마저 저버리고 카멜레온과 같은 동물로 전락하는 것을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비록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해도 자기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분명한 색깔을 지니고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인간적인 삶이라고 여겨진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충신불사이군(忠臣 不事二君)"의 충성심과 인간미 넘치는 의리의 사람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현금(現今)이라 하겠다.

우리 모두가 인간관계에 있어서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아 정의가 물 같이,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같이”(5:24) 흐르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