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순(福順)이 엄마.
복순(福順)이 엄마. // 황우 목사 백낙은.
내 나이 겨우 희수(喜壽)를 넘겼지만 내 건강이 옛날 같지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주 소시 때는 배탈도 자주 나고 병 치례를 자주 했지만, 청장년 시절에는 쇠를 삼켜도 소화가 잘 되었는데, 요즘은 속이 거북할 때가 종종 있어 걱정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배가 저녁 식사 때보다 오히려 불러져 있어 왜 그런지 몰라 병원을 가 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배를 좀 주물러 달라고 하면 “맨 날 운동은 안 하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니 그렇지” 하면서 핀잔이다.
하긴 일평생 65~67kg이던 체중이 요즘에 와서 부쩍 늘어 75kg이나 되니 뱃가죽이 북 가죽같이 팽팽해지고 말았다. 손가락 마디가 좋지 않은 아내가 주물러 주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참아 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컴퓨터 실력이 시원치 않아 글을 쓰다보면 다른 사람들 보다 배나 더 시간이 걸리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여긴다.
그리고 요즘 내가 하는 운동이라고 해 봐야 자건차를 타고 근처 호숫가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이니 절대적으로 운동량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내 배를 내 손으로 주물러 보지만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이런 때는 어릴 적에 내 배를 전적으로 주물러 주었던 복순이 엄마 생각이 난다.
복순이 엄마는 내 또래의 어린 딸 하나만 데리고 혼자 사는 40대쯤 된 아주머니이다. 얼마나 가난 했는지 남의 집에 길쌈을 돕거나, 남의 배를 주물러 주고 겨우 끼니를 해결하는 불쌍한 여인이었다.
요즘과 달리 옛날에는 먹을거리의 질도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음식들이 모두 거칠었고, 냉장고도 없어서 자주 배탈이 나곤 했었다. 우리 집도 누가 배탈이 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복순이 엄마를 불러다가 배를 주물곤 했었다. 배를 주물러 주는 삯이라고 해 봐야 농산물을 조금 주거나, 한 끼 식사를 대접하면서 집에서 엄마 오기만을 기다릴 그 딸 복순이 몫까지 챙겨 주면 그 아주머니는 언제나 감지덕지하신다.
어린 내가 배탈이 날 때마다 부모님은 전문 배 주무르기 아주머니인 복순이 엄마를 불러다가 배를 주물라곤 했는데, 열 살도 채 안 된 나이였지만 그 아주머니가 내 배를 주물면 왜 그 조그마한 고추가 곤두서곤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기도 하고 가소로워 헛웃음이 절로 난다. 그래서 다리를 오그리면 그 아주머니는 다리를 펴야 잘 내려간다고 펴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래서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리를 쭉 펴 버리곤 했었다.
재주꾼이 고무풍선을 가지고 기교를 부리면서 갖가지 모형을 만드는 것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바라보며 즐기듯이, 아마도 내 고추가 꼼틀거리는 것이 신기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요놈 봐라! 조깐게 고추가 살아 있네! 하고 말이다.
그 때 그 아주머니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남편도 없이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아온 터라, 딸이라도 복 받고 잘 살라고 복순(福順)이라 이름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남의 배를 주물지 못하는 날이면 그 엄마와 함께 배를 쫄쫄 곯아야 했던 불운한 북순이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엄마야 그렇게 비운 속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쳤겠지만 복순이는 그 이름대로 시집이라도 잘 가서, 정말 사랑받으면서 복덩이로 잘 살고 있기를 희망해 본다. 오늘따라 복순이와 그 엄마 생각에 두고 온 먼 고향하늘 바라보며 행복한 추억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