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에 대하여.
사후(死後) 세계에 대하여! // 황우 목사 백낙원.
며칠 전에 내가 페이스북에 ‘이단 사상’에 대한 글을 올렸더니 몇몇은 동의한다는 분들도 있지만, 더러는 ‘전에 목사님들이 영혼불멸이라고 가르쳐 주셨고, 그렇게 믿어 왔는데, 몸의 부활이란 말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더 나아가서 ‘백 목사는 신신학(新神學)을 주장하는 이단’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성서 그 어디에도 인간이 영혼의 불멸성 때문에 영생한다는 표현의 글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분이 ‘이단 사상’에 대한 나의 글을 읽고 제게 전화를 해서 묻기를 “목사님의 글 중에 ‘몸이 다시 산다’는 말씀은 사도신경에서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감은 하는데,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천국에 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라고 물었다.
물론 성서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한 편 강도에게 바로 “내일 낙원에 이르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즉각적으로 심판을 받는다고 볼 수 있지만, 또 계시록에서는 마지막에 주님이 오실 때 모두 부활한다는 내용도 있어서, 꼭 집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죽고 마지막 부활 때까지 사람의 영혼이 어디에 가 있느냐?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 질문 자체가 헬라 이원론과 영혼불멸 사상에 뿌리 한 질문이긴 하지만, 누구나 의심을 가질 만한 질문이라 여긴다. 우리 기독인은 몸과 영혼을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 분리하는 것 자체가 이원론이라는 말이다. 다만 “죽었다가 산다”고 만 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그 기간을 “잠”이라고만 표현하고 있어서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사후에 세계는 인간의 상상 초월의 다른 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만 성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부분만 이해할 수 있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천국을 겨자씨, 또는 누룩, 씨 뿌림 등으로 비유하셨는데, 이는 죽어서 가는 세상이라기보다, 현제 적이면서 미래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사람은 저기서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며,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계시록 21장을 보면 천국은 12 보석이 그 기초라 했고, 그 아름다움이 신부가 지아비를 위해 단장한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언어의 한계를 볼 수 있는데 그 이상 다른 것으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최상의 것으로 표현했지만,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 열두 보석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 그리고 기쁨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리고 천국은 밤도 없고, 눈물도, 저주도, 사망도 없는 곳으로 표현했으며, “거기는 시집도 장가도 아니 가고 하늘 천사와 같다.”고 하셨다. 물론 신약에서는 마리아가 천사를 보았다고 했고, 구약에도 몇몇 예언자가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영물을 보았다고 했는데, 번쩍이는 여섯 날개가 있다는 등등의 표현을 하고 있으나, 이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상상 초월의 영역이라 하겠다.
우리가 천사를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천사를 표현하겠으며, 천사나 영물을 인간의 필설로 표현하려는 의도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마치 땅속 굼벙이에게 매미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과 같고, 애벌레에게 나비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다른 비유로 말한다면, 임신한 여인이 자기 배를 쓰다듬으면서, 뱃속에 든 아기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엄마 아빠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를 설명하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아기가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사후(死後)의 세계는 인간의 지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가르치려는 노력도, 더 알려는 노력도, 모두 교만이요, 불경이라 하겠다. 그가 아무리 유식한 신학자라고 하더라도, 성경을 통달한 목회자라 하더라도 그냥 겸손하게 “모릅니다” 하는 것이 바른 답이라 여기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