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문화와 죽임 문화.
살림 문화와 죽임 문화. // 황우 목사 백낙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살림살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 귀 너머로 들은 노랫가락 중에도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하지.”라는 노랫말이 있었다.
여기 “살림살이”란 말에서 ‘살림’이라는 말은, 원래 불교 용어인 산림(山林)에서 나왔다고 한다. 산림(産林)이라고 쓰기도 하는데, 이 산림은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말할 뿐만 아니라, 인접해 있는 산림(山林)까지 관리하였다는 것이다. 그 관리를 잘못하여 산불이라도 나는 날에는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 말이 일반화하여 여염집의 재산을 관리하고 생활을 다잡는 일까지를 포함해서 ‘살림’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개는 살림살이를 잘한다, 아니면 살림살이를 잘못한다”라는 말을 하거나, “여자가 집에서 살림살이나 하지!” 하는 말들을 자주 듣는데, 그 “살림살이”라는 말의 본래 적 의미를 안다면, 그렇게 낮추어 말하거나, “살림을 차려서 꾸려 간다.”라는 뜻으로만 단순하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살림”이라는 말은 “...을 살린다”는 말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보릿고개를 넘기려면 생사를 걸어야 했다. 봄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다. 그땐 특히 여인들이 살림살이를 규모 있게 하지 않으면 집안이 패가망신(敗家亡身)하거니 살림이 거덜 나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편리해져서 살림살이가 옛날에 비하면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겠다. 의술의 발달과 좋은 약, 그리고 모든 입성이나 먹거리가 넘쳐나서 걱정이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 집에도 냉장고가 서너 개고, TV도 두어 개, 에어컨,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컴퓨터에다가 청소기 등 불편함이 없다.
요즘 내가 집안 사정 때문에 혼자 생활하는데, 내 코가 석 자라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 생애 전부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한 삶(목회)이었고, 지금도 나와 남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을 해서 내 몸 살리기를 하고, 제때 식사 챙겨 먹기, 산책, 그리고 취미생활을 하는 등. 내 딴에는 열심히 자기 살리기를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글을 써서 내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거나, 아니면 전화 상담으로 성서 풀이를 해 주는 일들을 하면서 남을 살리려는 “살림”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죽임 문화가 날마다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술 소비량이 세계 최고라고 하고, 흡연인구도 줄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정조 관념의 해이라든지, 마약, 그리고 인터넷 도박 등이 우후죽순처럼 번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죽임 문화가 팽배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하겠다.
이 같은 행위는 먼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대방을 죽이고, 더 나아가 다른 일반대중을 죽이는 것이며, 인간공동체의 파괴하고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니 이게 바로 죽임 문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요즘 코로나 펜더믹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데, 어떤 사이비 기독교 집단에서는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기는커녕,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 주고 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로 말미암아 정통교단과 순수한 교회까지도 손가락질을 당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자기 “살림”을 잘해야겠지만, ‘남을 살리는 살림’을 잘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침 햇살이 어둠을 밀어내듯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죽임 문화”를 삶의 모범으로 걷어내고, “살림 문화”를 창달(暢達)시키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 여기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