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시아 성지순례 여행기(1)
소아시아 성지순례 여행기. // 황우 목사 백낙원.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오던 소아시아 성지 순례의 날이 다가왔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정언용 목사님과 이혜주 사모님, 함택진 목사님과 박옥남 사모님, 오철진 장로님. 진성웅 집사님과 정영순 권사님, 박찬홍 권사님, 염명숙 집사님. 이경향 집사님, 백낙원 목사와 박정자 사모, 그리고 우린트래블러 여행사 사장이신 김완주 권사님까지 열세 명으로 팀을 이뤘다.
* 3월 28일(월)
주님 부활의 감격이 채 사라지지도 않은 월요일, 밤10시에 집을 나서 교회에서 일행을 만나 11시 30분 출발 인천공항 행 리무진에 올랐다. 오래 된 버스인지 소음은 조금 있었으나 새벽 공기를 뚫고 잘도 달린다.
* 3월 29일(화)
새벽 4시 20분경에 공항에 도착 / 청사는 깨끗하고 따스하다. / 그야말로 세계 일류급 공항이다. / 10시 30분 아시아나 항공 02551편에 몸을 실으니 / 육중한 몸매의 쇠 나비가 굉음을 내며 / 둥실 하늘로 치솟는가했더니 / 금방 고도 1200m, / 시속 800여km, / 밖의 온도는 -65℃ 인데 / 비행기 안은 우리 집 안방이다. / 짐작컨대 베이징 상공과 고비사막, / 그리고 알마타 상공을 거쳐 / 이스탄불까지 가는 800km의 대 장정이다.
이 천상의 아방궁에는 / 날개 없는 천사들이 / 온갖 시중을 다 들어 주고 / 시간 따라 각종 음료와 / 식사를 날라다 주니, / 우리가 어릴 적에는 / 상상도 못했던 호사다. / 이 나이에 옛날 임금도 받지 못했던 /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 준 / 우리 4남매와 / 흥해제일교회 /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손을 모은다.
11시간 30여분 만에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요즘 테러로 얼룩진 이스탄불 시내는 의외로 평온했고, 어디에도 불안한 기색도 없었으며, 경찰이나 군인들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괜히 걱정을 했나 싶었다.
로마가 일곱 언덕위에 자리 했던 것처럼, 이 이스탄불 즉 옛날 콘스탄티노플도 여러 개의 언덕으로 이뤄져 있었다. 과거 비잔틴 제국의 찬란했던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쳐들었고, 골목길까지도 돌도 포장되어있어, 로마의 어피언 도로를 보는 듯했다.
이렇게 1700여 년 전 흔적들을 보니,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콘스탄틴대제가 다스리는 나라에 온 것 같아 감개가 무량이다. RAMADA PLAZA 호텔에 투숙했다.
* 3월 30일(수)
이른 새벽 3시경에 눈을 떴다. 아직도 어제의 흥분이 사라지지 않았나 보다. 오늘은 세계 역사상 가장 뛰어난 건축물 중 하나인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사원과 BC 15세기에 세워 졌다는 오빌리스크, 히포드럼, 6개의 첨탑이 우뚝 솟아있는 블루 모스크, 톰카프 궁전의 보석관, 지하 물 저장고, 이스탄불 최대의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를 투어 할 예정이었으나,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이스탄불이나 앙카라가 여행 자제구역이니 인구밀집 장소에 가지 말고 주의하라는 문자가 오곤 해서 생략하기로 했다. 그래서 6시 40분 호텔을 출발하여 갑바도기아로 가기 위해 카이세리 행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터키는 아름다운 나라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동서로 형성된 반도국가인 터키는 국토의 97%는 아시아에 속했지만 나머지는 3%는 유럽에 속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국화(國花)는 튤립인데 지금이 바로 적기인지 길가엔 튤립이 한창 곱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유럽의 식물 종이 약 12.000종이지만 이 터키에 11,000여종이나 있어 식물의 보고이며, 그리고 터키는 세계 5대 농산물 수출국가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터키 사람들은 비교적 키가 크고 코가 높으며 미남, 미인 형이 많았다.
카이세리에 도착 후 전세버스를 타고 장군들의 정원이라고도 하는 갑바도기아로 갔다. 갑바도기아는 지중해 알쿠스 지진대에 속하였기 때문에 혹성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광경이 눈앞에 아득하게 펼쳐졌다. 그 온 산천에 웅장한 바위들이 즐비하게 도열해 있어 마치 장군들이 말을 타고 투구를 쓴 것 같다.
이 갑바도기아의 기묘한 바위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굴들이 있는데 수도사들과 많은 은둔자들이 이곳에서 고행을 한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기원전 7~8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깊은 우물이라는 뜻의 대림구유지하 도시로 갔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할 때쯤인 BC721년경에 만들어 진 것인데 지하 20층으로 120m까지 내려가는 규모이지만 현재 8층까지만 공개되었다.
동굴은 방어를 쉽게 하기 위해 좁고 낮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여기서 9Km나 떨어진 카이막클리 지하 도시와도 연결되어 있고, 수용인원이 3만 명 정도라고 하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하기 힘들다.
그들은 “밤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창세기의 말씀처럼 지금은 비록 밤일지라도 아침이 곧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인내하였으리라 여긴다.
갑바도기아 관광을 마치고 성서 상으로는 이고니온이라고 불리는 콘야로 향했다. 이 콘야는 바울의 여제자인 테클라 성녀의 고향이며, 여제자로서는 처음으로 순교를 당한 사람이다.
콘야는 “양의 가슴”이라는 뜻인데 인구 120만의 도시이다. 사막종교인 이슬람교도들이 무엇을 갈망했던가를 엿볼 수 있었다. 양의 가슴처럼 풍요롭고 따뜻한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었던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이슬람은 사원들은 푸른 숲,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를 상징하며 천국의 색깔인 푸른색을 칠했고 그래서 지금도 블루모스크라고 부른다.
잘 뚫린 고속도로를 두어 시간쯤 달리니 옛날 탈레반들이 숙소로 사용 했다는 크고 웅장한 성채와 비슷한 집이 보였다. 그래서 이 길이 옛날 실크로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잠깐 휴식 후 다시 1시간가량 달려 콘야 HILLTON GARDEN 호텔에서 투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