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여자.
* 아내라는 여자. // 황우 목사 백낙은(원)
여든이 넘은 늙은이가 아내 이야기를 자주 하면 주책을 떤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이 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내라는 여자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지금까지 내 의식 속의 아내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들도 다 가진? 안사람 중 하나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내가 인사불성으로 병원에 누워있는지 50여 일이나 되다 보니, 아내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가를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지금도 가끔 아내가 나를 놀라게 하려고 “여보!”하고, 튀어나올 것 같아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개가 짖으면 문밖을 내다보기도 하며, 이 방 저 방의 방문을 열어보기도 하지만, 역시 그냥 환상일 뿐이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려 찬바람이 씽씽 지나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아내의 병세를 보니 아무래도 후유증이 있을 것 같아 내가 아내를 잘 돌봐야겠다는 책임감으로 열심히 내 몸을 만들고 있다. 하루에 8천 보를 목표로 정하고 열심히 걷기운동을 하는데, 여든이 넘은 늙은이가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도 주일을 빼고는 대부분 목표를 달성했으나, 오늘은 아침에 9천 보를 걸었다. 아마도 병원에 가서 또 계단을 오르내리면 1만 보는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아침엔 평소보다 밥을 배나 더 먹었다.
내가 오래전부터 후배 목사님들께 “혼자 노는 법을 배워 두라.”고 말했었다. 동시에 나도 “혼자 노는 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될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석 수집도 해보고, 분재도 키워보고, 서예와 서각을 하기도 하고, 피리와 하모니카, 색소폰도 열심히 익혔다. 그리고 밥과 반찬을 만드는 것까지 익힌다고 익혀왔다. 지금도 아내가 콧구멍 줄로 식사를 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그런대로 손수 식사를 해결하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
아내는 밥을 먹을 수 없지만, 아내를 온종일 돌보는 간호인이 고마워서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한다. 간호인이 먹는 것이 곧 아내가 먹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요즘 들어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하나 있는데, “아내는 내 안에 해요, 내 고향이며, 내 집”이라는 생각이다. 아내가 집에 없으니 캄캄한 밤중이요,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가 된 기분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는데, 철없는 나를 그래도 50여 년간 사랑으로 보듬어 준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내의 소중함을 여든이 넘어서 깨달으니 이제 철이 조금 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