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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 살(五方煞)의 살풀이.

삼락 2016. 1. 20. 10:43

 

오방 살(五方煞)살풀이. // 황우 목사 백낙은()

 

(* 필자의 당부입니다. 평소에 기독교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갖고 계신 분은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어릴 때는 여름철만 되면 경상도 사투리로 초학(瘧疾))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말라리아가 유행이었다. 멀쩡하다가도 오후가 되면 어슬어슬 춥기 시작하다가 밤새도록 그야말로 똥이 끓도록 앓는다. 그러다가 그 다음 날이 되면 멀쩡하지만 그 다음 날 또다시 반복하는 병이 말라리아다. 나중에 몸이 쇠약해지면 하루를 띄우는 날걸이가 아니라 매일 앓기도 한다.

당시로써는 키니네라는 약이 있었지만, 서민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미군들을 통해서 더러 얻어서 먹으면 사람 피부까지 노랗고 하늘도 노랗고 땅도 노랗게 보인다.

 

우리 할머니는 말라리아를 앓는 나를 데리고 달님에게 자주자주 빌었다. 그러나 아무 효험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여러분들도 짐작하실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극약 처방을 하기도 하셨는데, 그 극약 처방이란 사람이 아직 일어나기 전 꼭두새벽에 일찍 나를 데리고 다리 밑으로 가서 다리 밑을 개처럼 기어 다니도록 명령하신다. 그리고는 몰래 숨어 계시다가 이놈의 개라고 벼락같은 고함을 지르신다. 할머니는 사람이 많이 놀라면 초학이라고 하는 역살(疫煞)이 뚝 떨어진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이런저런 방법을 다해 보지만 초학은 떨어지지 않았고 손자를 잃을 지경에 까지 도달하자 최후의 방법으로 굿을 하시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살풀이 굿 말이다. 우리 집에서 살풀이굿을 하는 광경을 자주 보았는데, 그 경험을 살려 종합적인 살풀이를 한번 해 보려 한다.

(물론 이 살풀이는 내가 열두 살 때 이미 교회에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이라는 것을 밝혀 둔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병든 나를 방안에 뉘어 놓고 무당은 물 한 바가지에 밥 세 숟가락을 풀어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는 부엌칼을 든 채 내게 다가온다. 그 칼끝으로 내 머리를 빗어 바가지에 담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방문 앞에 선다.

그리고 주문을 외기를 김산(경북 김천을 그렇게 불렀다.) 읍내 삼락이라는 동네에 백씨 문중 둘째 아들 낙원이가 병들었소이다. 삼신님이여! 살피소서. 이 가문에 낀 청록 살, 공방살, 역마살, 도화살, 역살 등, 오방 살을 모조리 물리쳐 주사이다.”라고 주문을 계속 외이면서 두 손이 닳도록 빈다.

 

몇 번이고 빌기를 계속한 다음 칼로 옛날 방문 창살에 십자가를 그리며 계속 같은 주문을 외운다. 그다음으로는 대문간을 지나 거리로 나간다. 주로 갈림길까지 가서 그 바가지의 밥을 길에 쏟으며 헛세! 헛세! 헛세!” 라고 세 번을 외친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또 십자가를 긋고 십자가 중심 부분에 칼을 꽂은 후, 그 칼 위에 바가지를 덮어씌우고 여러 번 주문을 외운 다음, 그 바가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집에서는 대문간에다가 짚으로 불을 피워 둔다. 무당이 그 바가지를 대문 앞에서 발로 밟아 깨뜨리고 짚불을 넘어 집안으로 들어가면 그것으로 굿이 끝나는 것이다.

 

이 살풀이굿을 재해석한다면 아마 이런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갈림길까지 나간 악귀가 밥 한 숟가락 얻어먹고 제 갈 길을 가라는 것이다. 만약 다시 돌아오려고 해도 칼끝으로 그린 십자가와 대문간에서 바가지 깨지는 소리에 놀라 도망을 치라는 뜻이라 여긴다.

그래도 따라 들어오려고 하면 피워 둔 짚불 때문에 집으로 들어오지 못한다는 상징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어떻든 그러한 살풀이 굿 때문에 내게 붙은 초학이라는 역병이 떨어져 나갔는지, 약을 먹어서 나았는지, 아니면 가을바람이 불어 말라리아가 사라졌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때 죽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 있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살풀이굿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삼신을 부르는 것일까? 우리가 교회에서 듣기로는 삼신이라면 성부, 성자, 성령을 말하는 것인데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방문과 길바닥에 왜 하필이면 십자가를 그었을까? 십자가는 분명 예수님이 지신 형틀인데 하는 생각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헛세라고 세 번을 외치는데 그 소리는 예수라는 소리가 변형된 것은 아닌가? 박수들이 살풀이를 하면서 예수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있다. 칼을 꽂는 것은 예수의 옆구리에 창을 찌르는 것과도 상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바가지도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그 해석은 독자들 각자의 몫이다.

무당들도 오방 살이 낀 우리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예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해보는 소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을 하는 나 자신도 오늘날 현대 교회들이 전하는 예수는 본래적인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예수는 성형외과에서 말끔하게 성형을 마친 터라 인류의 죄를 짊어진 고난의 예수가 아니라, 영광의 예수로, 축복의 예수로 많이 왜곡되었고 굴절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든 예부터 전해져 오는 이 살풀이를 통해 오방 살(五方煞)에 찌든 모든 분의 살()이 다 물러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