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받은 세 가지 기도.
* 응답 받은 세 가지 기도. / 황우 목사 백낙원.
올해 내 나이 일흔 하고도 넷이 되었다. 내 평생 많은 기도를 하였지만 수십 년씩 계속한 기도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나로 목사가 되게 해 주세요.” 였고, 둘째로는 “큰 그릇이 되게 하여 주세요.”였으며, 셋째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내게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1. 나로 목사가 되에 해 주세요.
나는 12살까지 기도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시 천주교”라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을 때, 강요에 의하여 여러 가지 주문을 외우기는 했어도 기도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13살 때 우연히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강단에 선 목사님이 하도 보기가 좋아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했는데, "나도 저 사람처럼 목사가 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2년이나 집에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이 기도를 계속 하면서 길을 열어주시기를 빌었더니, 김천에서는 처음으로 야간중학교가 생겨 3년을 마쳤고,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갈 일도 막막했으나, 다시 야간 고등학교가 생겨 그야말로 6년을 晝耕夜讀을 했다.
특히 겨울에 야간수업을 마치고 10여리나 되는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 얼어붙은 냇물을 맨발로 건너야 했는데, 집에 와서 보면 신발에 피가 벌겋게 묻어 있지 않겠는가. 얼음에 발이 베여 피가 났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방에 들어가 이불에 발을 묻으면 갑자기 발이 녹으면서 아프기 시작한다. 어찌나 아픈지 발을 붙잡고 뒹굴며 울다가 발이 다 녹은 다음이라야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면 12시가 넘는다. 그렇지만 “나는 목사가 된다.” 는 자부심 때문에 한 번도 부끄러워하거나 좌절해 본 적이 없다. 6년 동안이나 늑대와 동행해 가며 밤길을 다녔지만 결석 한 번 하지 않았다. 그 야간부 6년은 나에게 있어 더할 수 없이 좋은 용광로와 같은 연단의 시기였으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초석이었기에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내 생에 있어서 하나님께 드린 첫 번째 이 기도는 내가 서른 세 살 되든 해, 그것도 만 20년 만에 응답을 받아 더디어 목사가 된 것이다.
2. 큰 그릇이 되게 하여 주세요.
우여곡절 끝에 중고등학교와 신학교를 마치고 목회를 시작했다. 신학을 했다고는 하지만 목회라는 것이 생각처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인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만, 설교를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주일을 간신히 넘기고 나면 다시 수요설교를 할 걱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수요일이 지나고 나면 다음 주일 설교가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것뿐인가. 새벽설교, 심방설교, 각종 행사나 절기 설교 등등으로 꼬박 밤을 지새우고 새벽기도회에 나간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기도의 제목이 “큰 그릇이 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한 것이다. 이 기도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선 나는 잘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어떻든 나는 40년 동안 큰 과오 없이 목회를 하였다.
전문가인 목사가 하는 설교를 비전문가들인 신도들, 그 중에서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설교 잘 못한다는 이야기는 안 들은 것으로 위로를 삼는다.
“큰 그릇이 되게 해 주세요.”하는 이 기도는 40여 년 동안 계속했지만, 지금도 그 기도는 내게 빠질 수 없는 기도 제목 중 하나이다.
3.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내게 주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2:8절을 보면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이라는 말씀이 있다.
다 같은 설교를 하더라도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받아 시이적절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겠으며,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아 유식한 말씀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의 설교는 듣는 사람들이 잘 못 오해를 하고, 감정을 살만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의 설교는 가슴을 울리는 설교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설교가 슬픈 자에게는 위로의 말씀으로, 낙담하는 자들에게는 용기와 격려의 말씀으로 들려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내 설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감동을 주는 말씀이었는지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일이지만, 그 기도를 한지 거의 50여년 만에 응답을 받은 것이다.
내가 한국문학정신에서 지난 2012년 9월 12일 부로 “시인 겸 수필가”로 동시에 등단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등단 작가가 된 것이 기쁜 것이 아니다. 50여년 계속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다는 것이 기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등단했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50여년 만에 당신께 드린 기도를 응답하셨다는 것을 소리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기도 한 것은 모두 응답을 받았다. 앞으로 죽을 때 까지 또 다른 기도에 도전 할 계획이다. 하나님께서 또 다른 내 기도도 응답해 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다시 응답을 받는 그날 또 이 지면을 통하여 간증할 날이 오기를 간절히 빌며, 오늘도 마음속으로 두 손을 합장한다.
(2012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