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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에 간 늙은이

삼락 2017. 3. 29. 20:46

이상한 나라에 간 늙은이. // 황우 목사 백낙은()

 

이번에 미국 여행을 갔을 때였다. 연락이 닿지 않던 사촌 여동생들이 연락을 해왔다. 보스턴에 있는 사촌 여동생이 나더러 다시 뉴욕으로 오란다. 동부관광을 다녀온 지 며칠 안 된 터라 건강상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더니, 이번에는 시애틀에 사는 사촌 여동생이 왕복 비행기 표까지 보내주면서 다녀가라고 성화다.

LA에서 시애틀까지는 비행기로도 약 세 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다. 시애틀의 기후와 기온, 그리고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았더니 LA보다 기온이 20도가량 낮으며 비가 자주 온다는 정보를 얻었다.

 

국내선 비행기로 약 세 시간을 날아 시애틀에 도착해 보니 과연 비가 소록소록 내리고 있었다. 여동생 내외를 만나 월남 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곧바로 관광에 나섰다.

길가에는 오래전에 일손을 놓은 기차와 기찻길이 녹 쓸고 있었다. 과거와 미래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기차선로와 같은 평행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옛날에 인디언들이 살았던 곳으로 Snoqualmie falls이라는 곳이었다. 길 좌우엔 Western Red Cedar이라는 수십 년 된 나무들이 이상한 이끼 옷을 입고 좌우에 늘어서 섰고, 저마다 하늘 우러러 손뼉을 치고 있다. 아마도 자주 비가 오는 곳이라 이끼가 잘 자라는 것 같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광경이라 엘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에 온 듯 경이롭다.

 

수목들 사이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끼로 만든 도포를 걸친 왕과 시녀들을 거느린 공주가 나타날 것 같은 풍경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엘리스가 살던 오두막도 있고, 노루 사슴 등 온갖 동물들이 잔치를 벌이는 이상한 나라의 푸른 초장이 나올 것만 같다.

 

폭포 전망대에 다다르니 30m는 됨직한 장엄한 폭포가 아찔하게 펼쳐져 있다. 물론 나이아가라 폭포에 비길 수는 없지만 입을 다물기 힘들다. 이런 절경을 배경으로 인디언들이 살았다니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현대인들은 20세기 문명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에 인디언들을 보잘것없는 미개인들로 생각할지 모르나, 과연 오늘 우리가 그들보다 행복하다는 보장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든다. 가능하다면 이런 절경을 가까이에서 늘 볼 수 있는 이 강가 어디쯤에 통나무 집 하나 오도카니 지어놓고 세상 걱정 다 접어둔 채 오롯하게 살고 싶어진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동생 부부와 함께 동리 옆으로 난 산책로를 걸었다. 이끼 낀 이상한 나라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침 식사 후 도심으로 가서 부둣가 여러 명소를 구경하고 Space Needle이라는 전망대를 찾았다. 높이 150m쯤 되는 지점에 360도를 회전하는 레스토랑에서 바다와 그 건너편에 있는 올림픽 산맥 등을 전망하면서 식사를 했다. 돌아오는 길에 워싱턴 수목원(Washington arboretum)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산책을 하는데 속세를 떠난 도원경(桃源境) 같아 모든 시름이 걷힌다.

 

밤에도 낮의 들뜬 기분 때문인지 깊은 잠 이루지 못하고 한 늙은이가 미아가 되어 이 이상한 나라의 숲속에서 방황하는 꿈을 꾸었다. 그 다음날 다시 LA로 돌아왔지만, 인간은 누가 뭐래도 자연을 벗하고 사는 것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늙은 우리 부부에게 귀한 여행을 시켜준 시애틀의 동생 부부와 보스턴(Boston)에 살면서 적잖은 선물까지 보내준 동생 부부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