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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을 오르다.

삼락 2016. 10. 31. 11:53

팔공산에 오르다. // 황우 목사 백낙은.

 

며칠 전이다. 교회 산악회가 대구 근교에 있는 팔공산을 간다고 하기에 따라나섰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터였지만 팔공산은 많은 애환을 가진 산이었기 때문이다.

팔공산은 크게 두 번의 전투로 말미암아 수많은 젊은이가 희생된 곳이기 때문에 유명한 산이다.

 

그 첫 번째로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의 왕건과의 최대 격전지였다. 팔공산은 한자로 八空山이 아니고 八公山으로, 그 이름이 유래 된 것은 왕건이 여기서 대패하여 그의 여덟 명의 장수가 전사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그 전쟁이 이 지역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그때 불렀던 지명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파군(派軍)재는 불로동에서 동화사와 파계사로 갈리는 길목에 있는 재를 가리키는데, 왕건의 신하 신숭겸 장군과 그의 군사가 견훤 군에 패해서 흩어진 곳으로, 파계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아래 파군 재라 하고, 2차로 패한 동화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위 파군 재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왕리(失王里)라는 지명은 왕건이 팔공산 전투에서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면서 나무꾼으로부터 주먹밥을 얻어먹고 허기를 면했는데, 그 나무꾼이 나무를 다 하고 돌아와 보니 사람은 간데없었지만, 그가 왕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왕을 잃었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팔공산 전투에서 패하고 견훤에게 쫓긴 왕건이 3일 동안 숨어 지냈던 곳이 왕굴인데, 견훤의 군사가 왕건을 쫓다가 굴 입구를 보니 거미줄이 쳐져 있어 돌아갔다는 것이다.

 

왕건이 이 절에서 쉬어갔다고 임휴사(臨休寺), 왕건이 팔공산 전투에서 대패하고 이곳으로 은밀히 숨어들었다고 하여 은적사(隱蹟寺), 왕건이 전투에서 대패하고 지금의 반야월에 이르니, 한밤중인데 반달이 떠 있었다고 해서 반야월(半夜月)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불로동(不老 洞)은 나이든 사람들은 모두 전쟁터로 끌려가고 어린이들만 남아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고, 왕산(王山)은 신숭겸 장군 사당인 표충사의 뒷산인데, 적군에 포위된 왕건이 이 산 때문에 살았다 하여 왕산이라 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투는 6·25 때 남북 간에 있었던 전투이다. 195095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피아간 1만 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격전지였다. 이 전투에서 패했다면 우리나라는 존속하지 못하고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당시 우리 군은 학도병이 주를 이루었는데 제대로 총을 쏠 줄도 몰랐으며 총도 없는 병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앞의 병사가 쓰러지면 뒤따르는 병사가 그 총을 주워가지고 나가 싸웠다는 것이다.

 

동아 집단 시설지구에서 조금 오르니 야영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서 염불암과 염불봉을 거쳐 동봉이라 불리는 미타봉까지 3.4km이다.

염불암을 오르는 길 좌우편에 무슨 소원을 담았는지는 모르지만 백여 개도 넘는 돌탑들이 묵묵히 서 있다.

 

여기 어느 지점에는 아직도 발굴되지 못한 이름 없는 영령들이 누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고 보니, 바람 소리나 물소리도 예사롭지 않았다. 바람 소리는 그 많은 영령의 한숨이요,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그 영령들의 울부짖음이며, 바람에 흩날리는 안개는 그 영령들의 혼백이리라.

 

몇 개의 바위산을 넘고 넘어 1,167m인 동봉에 오르니 1,193m의 비로봉이 눈앞이다. 날씨가 흐린데도 꾀나 많은 등산객이 도착해 있었다.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에게 연세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일흔다섯이란다. 그래서 우리 집사람은 일흔다섯이고 나는 일흔아홉이라고 했더니 놀라면서 엄지를 치켜세운다.

 

전에도 이 팔공산을 몇 번이나 올랐지만 이번에는 감회가 더욱 새롭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호화는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 위에 세워진 누각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돌아온 것이 이번 등산의 수확이라 하겠다.

 

만추의 낙엽. (팔공산의 흩어진 낙엽을 밟으며)

 

마지막 이별인 줄도 모른 채

안간힘으로 매달렸던

목숨 줄 놓아 버리고

한 치 앞도 모르는

긴 여행을 떠나는 만추의 낙엽.

 

안개비 맞으며

바람에 흩날리는

정처 없는 여행길이 서럽다.

 

그래도 사람들은

낙엽 밟는 소리가 좋다지만

영령들의 몸 으스러지는

단말마요 곡소리라는 것을 왜 모를까.

 

모두 좋은 세상이라고

정신 줄 놓고 살지만

언젠가는 외로운 낙엽 되어

심해로 흘러갈 운명인데도

히죽거리며 사는 우리네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