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느껴라. (Helen Adams Keller)
황우 목사 백낙원.
태양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대의 그림자를 못 보리라.
고개를 숙이지 말라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라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라.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불구 자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된다.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태양을 바라보고 살아라.
그대의 그림자를 못 보리라.
오늘은 헬렌 켈러의 “가슴으로 느껴라.”라는 시를 소개하려 한다. 이 시는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 시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우리가 잘 아는 헬렌의 인생관이 담겨있는 시이기도 하고, 그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풍겨 나오는 시이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태양을 바로 보고 살지 못하고, 태양을 등지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람이 태양을 등지고 살면 그림자가 보이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이 실체도 없는 그림자를 쫓아다니다가 일생을 허비하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곤 한다.
명예라는 그림자, 권력이라는 그림자, 물질이나 향락이라는 그림자만 쫓아다니다가 결국 패가망신하는 것 말이다.
솔로몬도 이 그림자들을 쫓아 별의별 노력을 다했다고 했다. 시험 삼아 자기를 즐겁게 하려고 웃음 치료도 해 보았고,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해 보기도 하고, 사업을 크게 해 보기도 하였으며, 집을 짓기도 하고, 포도원과 과원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수목을 기르기 위해 못 들을 파기도 해 보았고, 수많은 노비와 처첩(妻妾)들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은보화로 고루거각(高樓巨閣)을 장식해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고백은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했고,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전 1:8)라고 탄식하면서 허무가(虛無歌)를 불렀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런저런 그림자를 보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의의 태양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그림자들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고개를 숙이지 말라.
머리를 언제나 높이 두라.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라.
이 땅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고개만 숙이고 사는 인생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다. 아래에는 희망이 없다. 절망이다. 허무이다. 그리고 사망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고개를 들어야 한다. 위에만 참 생명이 있다. 희망이 있다. 위를 보아라. 용기와 힘이 솟아날 것이다.
그리고 “머리는 항상 높은데 두어야 한다.” 높은 이상과 고상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너무 과대평가하지도 말고, 과소평가를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거꾸로 보지도 말고, 모나게 보지도 말고, 정면을 바로 보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라는 말이다. 그러면 거기엔 반듯이 길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헬렌은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으나, 그 영혼 즉 다른 말로 하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지켰으므로, 그녀는 아무것도 잃지 않은 승리자가 되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을 만큼 완벽하게 다 갖추고 있으나, 그 영혼과 믿음 소망 사랑을 잃음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경우가 한둘이 아닌 것 같다.
헬렌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라고 말한 바울의 신앙고백을 그대로 “아멘”으로 화답하는 듯하다.
고통의 뒷맛이 없으면 진정한 쾌락은 거의 없다.
불구자라 할지라도 노력하면 된다.
아름다움은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
고통의 뒷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다. 고통의 뒷맛이 어떤 맛일까? 분명히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단맛일 것이 분명하다.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어릴 적에 걸인의 경험을 가진 분이 계시는데, 아주 큰 교회에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 목사님은 자기 동일화의 폭이 거지에서부터 목사라는 데에 미치므로 그렇게 훌륭한 목회를 하고 계신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이같이 자기 동일화의 폭이 큰 사람일수록 더 폭넓은 인격과 신앙을 간직한 사람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이것저것을 다 경험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모두 살인의 경험을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경험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러한 간접경험은 세상에 늘려 있는 책이나 타인의 사례에서 얻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든다면 토스토 에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므로 살인자의 고뇌와 고통을 다소나마 체험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직접 경험보다는 못하겠지만 간접경험을 많이 할수록 더 넓은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대가 정말 불행할 때
세상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한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
우리가 눈을 똑바로 뜨고 찾아본다면 세상에는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존재 가치가 있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 사랑 말고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랑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가슴속 깊이 묻어 두신 것이다. 이같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손으로 만질 수 있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따위의 감각적인 것이 아니다.
고후 4:18절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다. 소망처럼 영의 눈으로라야 볼 수 있고, 가슴으로만 느껴지는 것이라야 진정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느낄 가슴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모든 불행이 야기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모두 머리는 항상 냉철하게 하고, 가슴은 따듯하게 가지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요, 첩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