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해지는 시골인심. // 황우 목사 백낙은.

 

요즘 우리가 사는 포항 지방에는 복숭아가 한철이다. 우리 집에도 복숭아나무가 세 그루 있다.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이 각각 한 그루씩 모두 세 그루이다. 이 세 그루만 해도 우리 부부가 두고두고 먹을 수도 있고, 자녀들이나 이웃과도 나누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복숭아를 따 먹기까지는 많은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전지(剪枝)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꽃이 필 때 그 시기를 맞춰 약을 쳐주어야 하고, 열매를 솎아야 하며, 계속해서 병충해를 예방해 주어야 한다. 거기다가 올해는 유난히 오랜 가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물을 주어야 했기 때문에 전기료가 복숭아 값보다 더 비쌀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이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복숭아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즈음, 복숭아나무에 이상함이 발견되었다. 복숭아나무 가지가 여러 개 부러져 있고, 조생종 복숭아는 물론, 아직 덜 익은 중생종 복숭아까지 거의 1/3이나 따간 것을 발견했다. 이웃에도 큰 과수원들이 많은데 세 그루밖에 없는 우리 것을 따갔는지 모르나 여간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도 서리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누가 서리를 해 갔거니 했다. 그래서 울타리를 다시 손질하고 근처에다가 보란 듯이 텐트를 하나 처 두었다. 이제는 괜찮겠지 했지만, 그다음에도 두세 차례 도둑이 다녀간 흔적이 남았다. 이것은 단순히 복숭아 서리 수준이 아니라 서너 상자는 될 것 같다. 그렇다고 그 풀숲에서 밤을 새우며 지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CCTV를 설치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복숭아나무 세 그루 때문에 백여만 원이나 하는 CCTV를 설치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일단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출소에 가서 가까이에 있는 CCTV를 좀 확인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도로에 설치된 CCTV는 너무 멀어서 식별하기도 힘들다면서 원한다면 가정에 CCTV를 하나 설치해 주겠다는 것이다.

 

세상 참 좋아졌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경찰이 하는 말이 이 CCTV를 설치하여 도둑을 잡으면, 그 도둑이 아무리 가까운 이웃이거나 비록 형제라고 해도 없었던 일로 할 수가 없고, 법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도 문제였다.

우리 밭은 골목에서 조금 들어와 있어서 복숭아나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가 어려운데도 복숭아를 따가는 것을 보면 먼 데서 온 도둑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만약 한 동리 사람이거나 방학 기간이라 친척 집에 다니러 온 외지 청소년이라면 내 입장도 난처해질 뿐만 아니라, 이웃 관계가 서먹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서 CCTV 설치는 포기 하겠다고 했다. 그런 나쁜 짓 못 하도록 꾸짖으려는 것이지 벌을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골인심은 옛날 시골인심이 아니다. 우리 시골이 왜 이같이 각박한 인심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옛날에는 여간한 것은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시장에 가지고 나가면 돈이 되기 때문에 시골 인심이 각박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어릴 때 시골은 대부분 울도 담도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립문이 있긴 해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사립문에 빗장을 질러 놓으면 주인이 멀리 갔다는 뜻이고, 그냥 닫아 놓으면 주인이 집에 없다는 뜻이며, 약간 찌그려 놓으면 곧 돌아온다는 뜻이고,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아무나 들어와도 좋다는 뜻이었다. 울타리 너머로 떡 쟁반 주고받으며 살던 어린 시절의 시골인심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 서리 : 남의 과일·곡식·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

Posted by 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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