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 황우 목사 백낙은()

 

어영부영하다 보니 내 나이가 여든하고도 이태나 지났다. 가끔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다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20대까지는 6.25 사변으로 인한 가난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었다. 항상 북한 인민군을 괴뢰군이라면서 미워하도록 길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비록 주경야독이지만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병역의 의무도 감당했다.

 

3~40대는 33세에 목사가 되었고, 결혼도 하였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목회를 하느라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고, 4남매 낳고 키우느라 악전고투(惡戰苦鬪)였다.

50대가 지나고 60대까지는 자식들도 모두 성장했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모아놓은 재산도 없는데 퇴임 후에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 때문에 안절부절이었다.

 

70대는 은퇴는 했지만, 목회 생활에서의 해방감은 물론, 아직 젊음이 남아 있다는 착각에 빠져 농사도 하고, 소도 키우고, 말도 타며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80대가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지 후회막급이다.

 

뒤돌아보면 그때 그 시절대로의 그 가치를 모르고 살았던 것이 부끄럽다. 늘 염려하며 걱정을 하면서 불만스럽게 산 것 말이다.

젊을 때는 내일의 푸른 꿈이 있어서 좋았지 않았던가! 중년 때는 진짜 인생의 맛을 알 때가 아니었던가! 노년 때는 저녁노을 같은 황홀함이 있지 않았던가!

 

우리 집에 오시는 요양사님이 50대 중반이다. 게다가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는지 주말부부라 한다. 아이들 다 길러 놓았겠다, 경제적인 부담감도 별로 없겠다, 부부 사이 피임 걱정도 없겠다 얼마나 홀가분하고 좋겠는가 말이다.

 

회상해 보면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만 그런데도 그러한 분위기를 즐기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부부간에도 사소한 일 가지고 토라져서 돌아누웠던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얼마나 부끄럽고 후회스러운지 모르겠다. 인생 까짓것 얼마나 된다고 말이다.

 

이제라도 좀 더 즐겁고 여유롭게 살아보려 하지만 사정이 따라 주지 않고, 건강도 허락하지 않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우화와 같이, 어디 조용한 대나무 숲이라도 찾아가 인생 아웅다웅 살지 맙시다.” 하고 외쳤으면 좋겠다.

 

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꽃피고 새우는 봄날이

희망충만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녹음방초(綠陰 芳草) 우거질 때는

그것이 평안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오곡백과(五穀 百科) 무르익을 때는

그것이 축복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그것이 행복이었고,

당신의 은혜였다는 것을

 

아내가 쓰러져 병상에 있으니

눈보라 몰아쳐 오지만

이제라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린아이가 평탄한 길 걸을 때는

엄마 손 뿌리쳤지만,

넘어지고, 자빠지면 엄마 손 찾듯이

주여! 이제라도 이 손 내밉니다.

 

주여! 간절히 비오니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허우적대는 이 손 붙잡아 주소서. 아멘.

 

Posted by 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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