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를 벗어 던져라. 황우 목사 백낙은(원)
인간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한 작은 “틀” 속에 갇혀 살았다. “태”라는 “틀”과 “자궁”이라는 “틀” 말이다. 그러나 얼마나 좋은 “틀”인가? 온도와 습도, 그리고 영양이 모두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최고급 “틀”이며, 그리고 그 “틀”이 하나의 우주였다. 그렇다고 안주(安住)할 수도 없지만, 거기에 안주해서도 안 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그 “틀”을 박차고 껍데기를 벗어 던져야 새 세상, 그야말로 신천지가 그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탄생했다고 해도 그 어떤 “틀”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또다시 “틀” 속에 갇혀 사는 것이 인간이다. 가정이라는 “틀”, 직장이라는 “틀”, 사회와 제도와 이념이라는 “틀”들이 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틀” 속에 살지만, 이북은 “공산주의”라는 “틀”에 갇혀 산다. 그뿐 아니다. 우리는 아주 큰 대우주 안에 조그마한 소우주에 속한 지구라는 “틀”이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길다. 나도 13세 때부터 기독교라는 “틀”에 갇혀 살다가 26세부터는 스스로 목회자라는 “틀” 속에 갇혀 살기 시작하여 40여 년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법적으로는 그 “틀” 속에서 일흔까지 안주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었지만 예순다섯에 그 “틀”을 과감히 깨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말이 그렇지 모아놓은 재물도 없이 처자식을 거느린 사람이 두 손 들고 자원은퇴(自願 隱退)를 한다는 것은 모세의 출애굽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40여 년 동안 몸담은 그 “틀”은 의외로 단단했기 때문에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막상 껍데기를 벗고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앞이 막막했다. 불안했다. 때로는 자다가도 가슴이 뛰고, 원인 모를 생 땀이 흐르기도 했다. 그 후에도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이 있었지만, 부단히 탈출을 시도하였다. 번데기가 스스로 만든 고치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상상초월의 자유로운 세계를 맛보는 것과 같이 말이다.
나는 은퇴 후 그러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과 몸이 한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집 안팎을 증·개축(remodeling)하고, 연못도 파고, 과목을 심고, 농사일하였다. 그리고 손수 40여 평의 우사(?牛舍)를 짓고 다섯 마리 소를 먹이기 시작했으며, 토끼와 염소, 칠면조 등도 기르고, 양봉도 하였다.
그렇지만 잠이 들기 전에는 초조하고 불안하여 견디기가 힘들어 몸을 치 떨곤 했다. 그래서 또 다른 탈출을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흔 살에 승마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일흔이면 노인이라고 승마장에서 등록도 해 주지 않는 것이 상례였지만, 비교적 건강하게 보였던 탓에 등록해 주었고, 3~4개월 동안 연습을 한 후에 말을 타고 밖으로 나가 산과 들로 쏘다니는 외승(外乘)을 하기 시작했다.
아예 말을 한 마리 구매하여 집에서 타기로 작정하고 마사(馬舍)를 지었고, 우천(雨天)이라도 말을 탈 수 있도록 지름 20m 정도의 원형 트랙을 만들고, 지붕을 덮어 전천후 승마장을 마련했다. 이렇게 일흔에 승마를 시작하여 일흔다섯까지 말을 탔다.
그러나 내가 일흔다섯 되던 해 말이 병으로 폐사하는 바람에 지금은 말을 타지 못하고 있지만, 말을 타고 온 산천을 누비며 자유를 만끽했었다.
그렇다고 또 거기에서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탈출을 해야 하고, 또 다른 탈출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그동안 늘 갈망해왔던 시인의 꿈과 수필가의 꿈을 위해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결국 일흔다섯에 세 개의 문단에서 시와 수필에 등단하였고, 오늘에 이르렀지만 좀 더 일찍 탈출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물론 우리 인간이 일평생 벗어나지 말아야 할 가정이라는 “틀”과 국가라는 “틀”도 있지만, 인간이 만약 다른 어떤 고정관념의 “틀”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고인 물처럼 마음과 육체가 썩고 말 것이다.
오늘은 탈출의 시대이다. 탈이념시대요, 탈 고정관념의 시대이며, 탈 우주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어떤 보이지 않는 “틀” 속에 안주하지 말고 실패하더라도 탈출하라고 권고하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조그마한 한반도 땅을 벗어나 동양으로, 아니 전 세계로, 그리고 저 광활한 우주로, 더 넓고 더 큰 상상의 세계로 나래를 활짝 펴고 더 높이 도약하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