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독인들은 찬송가를 많이 부른다. 나도 목회를 하면서 일평생 찬송가를 많이도 불렀다. 요즘에는 복음성가를 많이 부르지만, 옛날 우리가 어릴 때는 예배 시간이나 부흥회 때는 찬송만 불렀고, 찬송을 부르면서 그 가사에서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찬송가에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찬송도 있지만, 어떤 특정 시간이나 특정 기간에만 부르는 찬송도 있다. 예를 든다면 개회 송, 폐회 송, 헌금 송, 절기 송 등등이다.
그중에는 특별히 헌금 시간에 자주 부르는 찬송이 있는데 특히 찬송가 50장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 사랑하는 구주 앞에 모두 드리네.”라는 찬송 말이다. 이 가사 중에서 특별히 “모든”이라는 말과 “모두”라는 말 때문에 나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양심 가책이 되어 차마 목구멍에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목회할 때는 나름대로 일평생 주님을 위해 몸을 바쳤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별다른 가책 없이 불렀지만, 지금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드리거나 “모두” 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헌금을 드린 다음 뒤에 얼마나 남았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과부의 엽전 두 닢이 더 귀하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부자는 많은 헌금을 했지만, 그 뒤에 남은 것이 많았고, 과부는 비록 엽전 두 닢을 드렸지만, 생활비 전부를 드려서 그 뒤에 남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11조도 하고 각종 감사 헌금도 드린다. 하지만 주일에는 지갑에서 5만 원 권은 옆으로 고이 모셔두고, 또 만 원권도 밀어내고, 천 원짜리 몇 장 드릴 때도 있다. 요즘은 내가 물질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린다”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이는 양심을 속이는 일일 뿐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드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가사는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내 양심에 거리낀다면 역시 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 가사를 다른 말로 고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가사를 고친다면 “내게 주신 것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네...사랑하는 구주 앞에 고이 드리네”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개사를 하는 것은 나의 권한 밖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해 보는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