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말라가는 사회. // 황우 목사 백낙은.
요즘에 내가 왠지는 모르나 부쩍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 감동적인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다가도 눈물이 나고, TV에서 슬픈 사연을 보아도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이 눈물은 우리 집안의 내력인 것만 같다. 우리 어머님은 유난히 눈물이 많으신 분이셨다. 이웃이 아픔을 당하면 그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한없이 우시곤 하는 모습을 보았다.
요즘 사람들이야 소설이나 만화나 드라마를 보고 울지만, 그때 어머님은 실제 상황을 보고 우셨다. 이웃집의 소가 아파도 우셨고, 친구 아들이 군대에 가도 우셨고, 시집을 보내는 이웃을 보고도 우셨으며, 장례 행렬을 따라가면서도 우셨다. 일을 할 때 타령을 부르면서도 우셨다. 좋아도 우셨고 슬퍼도 우셨다. 우셔야만 했던 이유가 어찌 한두 가지었겠는가?
예배당에 나가 기도할 때도 언제나 어머님의 자리가 따로 있었다. 예배당에 갈 때는 성경 찬송은 물론 수건도 함께 가지고 가셨다. 기도하시되 형님을 위해 100일, 나를 위해 100일 작정 기도를 여러 번 하셨다. 그 기간에는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하시다가 잠이 들면 그대로 주무시고 또 잠이 깨면 기도를 하신다. 그 기간에는 한 번도 두 다리를 펴고 주무시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님이 기도하시던 마룻바닥은 눈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고 하도 닦아서 반들반들 빛이 나기도 했다.
나도 개인적으로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 자랐다. 어머니가 젖이 없어 암죽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많이 울었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들은 아침 일찍 들에 가시고 할머니와 같이 집에 있으면서 들에 간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운 울음 또한 많았다고 들었다.
소년 시절도 일제 치하에서 밥그릇은 물론 숟가락까지 공출당하는 서러움 때문에 울었고, 별로 귀하지 않은 가문에 태어났기 때문에 남에게 천대를 받아서 울었으며,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겨 운 울음 또한 얼만지 모른다.
무엇을 빼앗겼냐고 의아해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아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렇다. 그때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소를 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부잣집의 배냇소를 우리가 먹이고 있었다. 마침 625동란이 일어나 소달구지에 세간을 바리바리 싣고 피난을 나갔다. 그러나 낙동강을 건널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소 한 마리만 몰고 강을 건넜다. 그러나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그 소를 군인들에게 쌀 한 가마니에 팔았다. 그 쌀을 아버님이 지고 다니면서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피난을 했다. 피난길에서 돌아와 보니 소 임자가 논 너 마지기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 논을 팔아서 소를 사 주겠다고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결국, 논 너 마지기, 800평 문서를 넘기고 말았다. 그때 내 나이가 열세 살이었지만 분하고 서러워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가정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못 하고 집에서 가사를 돌볼 때 학생 모자를 쓴 친구들을 보면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곤 했었다. 내 유, 소년 시절은 그렇게 울음으로 보낸 것 같다.
장년이 되어서도 목회를 한답시고 제대로 부모님 한번 잘 모시지도 못했는데, 일찍 부모님을 여의어서 가슴을 치고 울었으며, 목회하면서도 너무 어려운 나머지 두 부부가 서로 끌어안고 몸부림치며 많이도 울었다. 그 뿐 아니라, 성도들의 아픔을 내가 끌어안고 강단에 엎드려 밤을 지새우며 흘린 눈물, 그 많은 눈물을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가 차츰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과거와 달리 눈물이 마른 시대가 되어 간다는 말이다. 학교엘 가도 눈물이 없고, 양로원엘 가도 눈물이 없고, 교도소를 가도, 병원을 가도 눈물이 없고, 장례식장엘 가도 눈물이 없다.
요즘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존속살인 사건들도 줄을 잇고 있는데도 눈물이 없다. 사회가 그만큼 비정해지고 각박해졌다는 것을 반증(反證)하는 것이라 여긴다.
우리 모두 이제부터라도 많이 울어야 하겠다. 우리가 울어야 할 이유가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허리 잘린 이 나라를 위해서도 울어야 하고, 압제당하는 북녘의 동포를 위해서도 울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삭막한 사회를 위해서도 울어야 하겠고, 사리사욕만 챙기기 바쁜 정치 현실을 위해서도 울어야 하겠다.
자꾸만 소외되어가는 홀몸노인들을 위해서 울어야 하고, 부모 없는 고아나 장애우들을 위해서도 울어야 한다.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울어야 하고, 무분별한 농수산물 수입으로 망가져 가는 농어민을 위해서도 울어야 한다. 자꾸만 경쟁사회로 내몰리는 우리들의 자녀를 위해서도 울어야 하겠다.
신 학자 크리스소톰(John Chrysostom)은 "죄의 불꽃이 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눈물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왜냐하면, 눈물은 허무의 용광로를 끄며, 죄의 상처를 깨끗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눈물이 말랐다는 사실은 심각한 병통이다. 그냥 덮어 두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눈물은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치료하는 특별한 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