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늑대.

                                                              황우 목사 백낙은.

옛날부터 인디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두 마리 늑대 이야기가 있다. “얘야!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단다. 한 마리는 악한 늑대이고, 한 마리는 착한 늑대란다. 악한 늑대는 탐욕스럽고 화도 잘 내고, 질투, 분개, 열등의식, 거짓말까지 잘하는 이기적인 늑대이고, 착한 늑대는 친절하고 겸손할 뿐만 아니라, 기쁨, 평화, 이웃사랑도 실천하는 진실한 늑대란다.” 그러자 손자가 하는 말이 할아버지! 그 두 마리 늑대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하고 물었다. 할아버지의 대답은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타락 이후 인간에게는 두 가지 인간성이 공존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도 성선설(性善說)”도 있고, “성악설(性惡說)”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사람이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그 인간성과 그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 분명하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글과 같이 누구나 사람에게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낮에는 지킬박사였다가 밤이면 하이드씨로 변하는 사람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악한 늑대에게 먹이를 많이 주면 그는 악한 인간 하이드씨로 변하게 되지만 선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지킬 박사가 되는 것이리라.

악한 늑대가 좋아하는 먹이는 거짓과 불순종, 술 취함과 방탕, 음행과 탐욕,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 악독과 노함, 분 냄과 떠드는 것 등, 섞어 냄새나는 것까지 모두 다 잘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어떤 사람은 악한 늑대가 좋아하는 먹이만을 계속 주다가 패가망신하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악한 늑대가 좋아하는 악독과 노함의 먹이를 계속 주다가, 결국 그 마음에 분노가 용암처럼 분출하여 우리가 입에 담기도 두려운 희대의 악한(惡漢)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음욕이라는 먹이를 계속해서 주다가 색마가 되어 여러 사람의 일생을 망치는가 하면, 평온한 남의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어떤 늑대에게 어떤 먹이를 주고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선한 늑대가 좋아하는 먹이를 주어야 한다. 선한 늑대가 좋아하는 음식은 매우 단순한 것들인데, 한마디로 사랑과 화평, 용서와 칭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감사하는 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보다 더 좋은 명약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나라에도 위정자들과 교육가 등 많은 지도급 인사들이 있는데, 그들이 자기의 명성이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악한 늑대가 더 좋아할 말들만 하고, 악한 늑대가 좋아하는 먹이만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평화를 말하기보다는 싸움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기보다는 노함과 분쟁을 더 가르치는 꼴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 나 자신은 지금까지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더 많이 주어 왔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솔직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나도 항상 그렇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내 속에 존재하는 선한 늑대에게 사랑과 화해와 용서 등등, 선하고 좋은 먹이를 더 자주 주어서, 인생 끝 날에 좋은 열매가 충만한 생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Posted by 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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