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시지탄.[2019년 6월 26일(수)] 황우 목사 백낙원.
밖에는 비가 구성지게 내린다. 요양보호사가 아내를 돌보는 세 시간은 내게 천금 같은 시간이다. 비가 오니까 딱히 할 일도 없고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옛날의 회상이 내 뇌리를 스쳐간다.
오래된 이야기지마는 ccc에서 실시했던 “춘천성시화운동” 때 내가 목회자들 한 팀을 맡아 강의를 했었다. 거기에 여의도 순복음교회 교역자들이 몇 사람 있었는데, 그 중에 최자실 목사님 남편 되시는 분이 참석을 했었다. 그 분이 내 강의를 듣고 내게 하시는 말씀이, “우리 여의도 순복음교회로 오실 생각 없으시냐?”고 물었다. 그 때는 귀가 솔깃했다. 세계적인 대형교회에 간다면 내 목회의 앞날이 광명 대로(光明大路)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민이 되었지만 “부족한 사람인데 그렇게 까지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생각은 사두용미(蛇頭龍尾) 즉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는 사자성어가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형교회에서 성도들의 이름도, 사정도 모르는 목회보다는 작은 교회에서 오순도순 목회다운 목회를 하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어촌의 작은 교회들만 목회를 한 나로서는 가끔씩 그 때 그 요청을 받아 들였더라면 좀 유여(裕餘)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후회를 해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때 내가 여의도순복음교회로 갔더라면 사람의 기분을 맞추는 목회는 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목회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목회 초년생인 그 때의 각오는 어디로 사라지고, 일회성(一回性)목회? 그냥 해버리는 목회를 한 것 같아 얼마나 죄송스러운지 모르겠다.
아내가 쓰러지고 난 직후였다. 다른 사람은 당하지 않는 시련을 나 혼자만 당하는 것 같고, 하나님께와 동료목회자들, 그리고 성도들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목사님들 중에는 자주 전화를 해 주시고 문병을 와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만, 그 목사님 사모님이 편찮을 때 나는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 여간 송구스러운 게 아니다.
그리고, 20여 년 전에 유방암이 걸려 서울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신 권사님께서 위로와 격려의 전화를 자주 자주 해주셨다.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죄송스러웠는지 몸 둘 바를 몰랐다.
“권사님이 편찮으실 때 나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 때 얼마나 목회자의 간절한 격려와 기도가 그리우셨을까! 내가 당해 보니 그 절박한 심경을 알겠습니다. 그 때 더 관심 기우리지 못한 것 용서해 주세요.” 하면서 펑펑 울었다.
그 때가 경주 양남에서 목회를 할 때인데, 서울까지 두 번 심방을 가긴 했지만, 그것으로 목회자의 사명을 다 한 것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심방 안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지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고백이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신 후, 그렇다면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주님을 사랑하기나 한 건지 나도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당해보지 않은 아픔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시련을 당해 보니까 같은 시련을 당하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은퇴를 한지도 17년이 다 되었는데도 이제 내가 다시 목회를 한다면 좀 더 감성적인 목회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주님이 원하시는 목회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회한이 내 목을 조른다. 후회막급(後悔莫及)이요, 만시지탄(晩時之歎)일 뿐이라 가슴을 치고 싶다. 이일을 어이하면 좋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