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멘토 모리 // 황우 목사 백낙은()

 

오늘 제목으로 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은 너는 반듯이 죽는 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헬라 말이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였던 필립 왕은 아주 특별한 신하 한 사람을 항상 옆에 두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다른 신하들이 문안인사를 올리기 전에 제일 먼저 왕 앞에 나타나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는 신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옛날 로마에서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 한 사람을 시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하여 이번에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 대지 말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당신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의미로 생겨난 풍습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며 늘 죽음을 되새기면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 것을 서로가 다짐한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기독교에는 재()의 수요일이라는 절기가 있는데 사순절이 시작되는 첫 번째 수요일인데, 사제가 신자들의 이마에 재를 발라 주면서 인생아! 기억하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했다.

인간의 본질은 흙이다.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구나 하나님의 주권을 기억하고 겸손히 존절하게 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내가 목회를 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자다가 한밤중에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서 선채로 소변을 보는데, 머리에 있는 모든 피가 아래로 빠져 나가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정신을 잃고 머리부터 화장실 바닥에 부딪치며 쓰러졌기 때문에 머리가 터져서 유혈이 낭자한 상태인데도 그 순간 나는 매우 기분 좋은 황홀경(怳惚境)에 빠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마치 꽃이 핀 화창한 봄 들판을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 정신이 드는데 아내가 자꾸만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왜 이래! 가만히 내 버려두지 않고! 하고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마가 깨져 두피가 뒤로 완전히 벗어졌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대로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가서 40여 바늘을 꿰매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지 않다. 고통이라는 것도 어떤 한계를 넘으면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미움과 사랑, 환희와 슬픔, 만남과 이별, 기억과 망각의 싸움이라 여긴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새로운 기대와 열망,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 어제보다 더 낳은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싸움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은 한없는 축복이요, 감사요, 환희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들은 살아 있음을 노래해야하고 감사해야한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네 인생은 누구나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좁디좁은 관문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항상 죽음과 마주보며 사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것도, 병의원을 찾는 것도, 위생적 생활을 하는 것도, 모두 죽음을 의식한 행위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워 일평생 종노릇 하며 금수(禽獸)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살려는 사고(思考)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 보려고 스포츠에 미치거나 섹스에 미치고, 도박이나 명예나 정치에 미치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런 생각은 무지요, 교만이요, 방종이다. 그런다고 해도 죽음은 늘 문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며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계란이 깨져야 병아리가 되고, 탯줄이 끊어져야 코로 숨 쉴 수 있으며, 육신의 생명 줄이 끊어져야 신비한 생명 줄에 연결되는 것이라 여긴다.

결론하면 바울이 말한 대로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항상 죽음을 의식하면서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온유 겸손한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명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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