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2월 13일(금)
오래 전에 어떤 회사를 방문했는데 사훈이 “예·미·덕·제·고”였다. 풀어보면
예 : 예.(인사)
미 : 미안합니다.
덕 : 덕분입니다.
제 : 제가 하겠습니다.
고 : 고맙습니다. 라는 말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나도 요즘 입에 달고 있는 말이 몇 가지가 있는데 “미. 사. 고. 예. 잘” 이다. 1년이 훌쩍 지나도록 환자인 아내와 함께 있으니까 누구와 이야기 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나 이 말들은 내가 지난 1년여 동안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해 온 말이기도 하다.
1. 미 : 미안해! 라는 말이다.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서 인사불성이 되었을 때, 아내를 부둥켜안고 미안해!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여보! 내가 당신 건강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당신 고생 시켜서 미안해!”라는 말을 아마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서너 달은 했을 것이다.
2. 사 : 사랑해! 라는 말이다.
아내가 서너 번이나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을 오갈 때, 만약 이대로 세상을 떠난다면 평생 “사랑해!” 라는 말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아껴두었을까? 꽁꽁 숨겨 두었다가 뭣에 쓸 건가 싶기도 하여서다. 식물인간인 아내를 끌어안고 “여보! 나 당신 사랑해! 나 당신 사랑한다고!”라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
3. 고 : 고마워! 라는 말이다.
고마워! 라는 말은 아내가 조금씩이나마 호전될 때,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 준 아내가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한 말이다. 그러나 사실 일평생 고맙다는 말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살아 온 내가 한없이 밉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결혼 후 55년 동안 오로지 못난 이 사람만을 위해 헌신해온 아내가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말이다.
4. 예 : 예쁘네! 라는 말이다.
일흔이 넘은 할망구인 아내가 뭣이 그리 예쁘겠는가마는 요즘엔 예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내가 아직은 자기 손으로 얼굴을 잘 닦지는 못하지만, 손에 물수건 들려주고 내가 거들면서 얼굴을 닦게 하기기도 하고, 아내 손에 크림을 발라 주고 얼굴에 바르게 하거나, 같이 립스틱을 바르거나, 눈썹을 같이 그리는 등등의 치장을 한다. 그러면서 “아! 예쁘다” “예쁘네!” 라고 주문처럼 외운다. 늙어도 여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예쁘다는 말을 싫어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의학적으로도 이런 말을 자주하면 엔도르핀이 많이 생산되어 치료가 속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5. 잘 : 잘했어! 라는 말이다.
요즘 아내가 침이 나 눈물이 나오면 닦아 달라고 입이나 눈을 가리키기도 하고, 스스로 닦으려고 애쓰기도 할 뿐만 아니라, 이불을 당겨 앞을 가리기도 하고, 손에 무엇을 잡거나 휠체어를 태울 때 다리에 힘을 주면서 일어서려는 행동들을 많이 보여준다. 그 때마다 잘했어! 잘했어!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 나온다.
이런 말들 외에도 하루에도 수십 번은 넘게 부르는 노래들이 있다. 그 중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가곡들도 있지만,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라는 복음송이다. 아내를 재울 때 가슴을 두드려 주면서 부르기도 하고, 아내가 심심해 할 때, 때로는 3~40여분 동안 쉬지 않고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사실 젊을 때는 아내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다. 목회 하느라 무드를 즐길 짬도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추억들을 만들지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메아리도 들려오지 않지만 “미. 사. 고. 예. 잘”을 계속하다보면 언젠가는 내 귀에도 아름다운 메아리로 돌아오리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