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운동에 즈음하여.   //    황우 목사 백낙은

 

요즘 성폭력에 대한 미투(me too) 운동으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지금까지 남성 우월주의 사고에 젖어있는 우리 한국 사회는 그 어떤 나라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문제에 예외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요즘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겸손히 자신을 반성하면서 옷깃을 여밀 때라 하겠다. 반성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의 도덕적, 양심의 기준을 높이고, 칸막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급선무라 여긴다.

 

얼마 전에 뒷집에서 경계측량을 했는데, 우리가 뒷집 땅을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굽은 경계선을 서로 양해 하에 사고파는 일 없이 땅 몇 평 정도는 그냥 주고받았던 것이 문서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실 땅의 경계선이 좀 들어가고 나가고 해도 등기상 평수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써지 않았지만, 요즘은 도시화가 되어 가면서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서로가 양보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간의 경계가 분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이웃이 서로 불목 하는 원인도 되고, 큰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 노아 방주 안에는 사자도 있고, 양도 있었을 것이며, 독수리도 있고 비둘기도 있었을 것인데, 만약 칸막이가 없거나 울타리의 높이가 적당하지 않았다면 방주 안은 온통 살상의 도가니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에도 여러 가지 짐승이 살고 있다. 사자 같은 분노가 사는가 하면, 비둘기 같은 평화도 살고, 탐욕스러운 구렁이가 사는가 하면, 사랑스러운 앵무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속에 칸막이가 분명치 않으면 약육강식의 전장(戰場)이 되어 사람의 마음이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 경계의 기준을 강화하고, 담장은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 컨데, 헬라 적인 사고로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 여러 가지 종류의 사랑이 있다. 남녀 간의 육체적이고 정열적인 에로스(Eros) 사랑이 있고, 전우나 친구 동료를 사랑하는 필리아(philia)의 사랑도 있으며, 부모가 자식을, 또는 가족 간의 사랑인 스톨케(Storge) 사랑도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무조건 적인 아가페(Agape) 사랑도 있다. 그 외에도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고 해서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도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랑의 경계가 모호하다면 큰 혼란이 오고, 결국은 파탄이 나게 되거나 인간이 아닌 짐승의 세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스톨케가 에로스로 변질되기도 하고, 플라토닉 러브가 결국 에로스 사랑이나 아니면 질투로 변질되어 서로를 침범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노아 방주에서와 같이, 경계가 분명해야 할 뿐 아니라, 양심의 칸막이의 높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간적인 노력이나 학문적, 또는 도덕적 수양으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나, 완전한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힘이 아닌, 타자(他者)의 힘, 즉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라 여긴다.

 

우리가 모두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부터라도 대오각성(大悟覺醒)할 뿐만 아니라, 수신제가(修身齊家)하여, 양성평등을 저해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는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Posted by 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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