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신경 강해(2)
마태복음 14:22-33.
오늘은 사도신경 강해 그 두 번째 시간이다. 요즘도 사도신경이 세례 문답 때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본래 이 사도신경은 세례 지원자들의 신앙지침으로 제정된 것이라 한다.
1.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이다.
(1) 먼저 그 외아들이라는 표현부터 생각해 보겠다.
이 외아들이란 말은 “독생자”라고도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와 요한복음 3:16절에 잘 나타나 있고, 마태복음 27:54에도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묻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변화 산상에서도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고 하셨다. 이러한 모든 고백은 인간들이 주님의 말씀과 그 행하심, 그리고 그 권위를 직접 본 후에 한 고백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과 같은 것이 아니고, 이 천지가 창조되기 전 태초로부터 계셨고, 그 근본은 “로고스” 즉 말씀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그 독생하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그 외아들”이라는 고백이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다.
이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근본이면서 우리 주님이 되신다는 고백이다. 이 “주”라는 단어는 “퀴리오스”인데, 초대교회 때는 치리자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고백이었다.
당시 군주들은 자기를 “퀴리오스”라고 부른 다음에 그 어떤 신을 섬겨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카이사 퀴리오스냐” 아니면 “예수 퀴리오스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카이사 퀴리오스”라 하지 않고, “예수 퀴리오스”라고 했기 때문에 많은 순교자가 생겼다.
예수님이 어느 날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시면서 마을 어귀에 가면 나귀가 매여 있는 것을 볼 터이니, 고삐를 풀어 끌고 오너라. 만약 누가 무어라 하거든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가서 그 나귀를 풀어 끌고 오려고 하니까, 나귀 주인이 “왜 내 나귀를 풀어 가느냐?”라고 물었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대로 “주가 쓰시겠답니다.”라고 하자, 순순히 보내 주었다. 그 나귀 주인은 자기가 아니라,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사람이 제각기 내 것이라고 등기를 해 놓고,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지만, 이 세상 것을 빌려 쓰다가 고스란히 두고 가는게 인생인데 어떻게 자기 소유란 말인가?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도 많은 크리스천이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 내가 가진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고, 내 뜻대로 사는 우리들이야 말로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어느 성당 벽에 작자 미상의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너희 날 주라고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 너희 날 빛이라 부르면서 우러르지 않고 / 너희 날 길이라 부르면서 걷지 않고 / 너희 날 삶이라 부르면서 의지하지 않고 / 너희 날 슬기라 부르면서 배우지 않고 / 너희 날 깨끗하다 부르면서 사랑하지 않고 / 너희 날 부하다 부르면서 구하지 않고 / 너희 날 영원이라 부르면서 찾지 않고 / 너희 날 어질다 부르면서 오지 않고 / 너희 날 존귀하다 부르면서 섬기지 않고 / 너희 날 강하다 부르면서 존경하지 않고 / 너희 날 의롭다 부르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 그런즉 너희들 /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고 말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한다면 그분을 진정한 주(主)로 모셔야 한다. 오히려 예수를 발아래 꿇려 놓고 있으면서 어떻게 주(主)님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분의 뜻에 나의 뜻을 복종시켜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처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우리의 마지막 기도여야 할 것이다.
(3)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이고, 라틴어로는 “예수아”이다. 여호수아라는 말뜻은 “구원하신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하셨다.
구약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한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도 새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들을 영원한 언약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예표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그것을 증명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행10:38절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놀라운 사실은 4 복음서에서 예수라는 말이 600여 번 기록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4번, 주 예수라고는 2번 정도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예수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되셔서,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인 다윗 왕국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전 인류의 희망이요 소망이시다.
그래서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고 했다.
결론적으로 이 고백은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시오, 메시아시오, 인류를 구원할 구속 주라는 고백이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마음의 왕좌(王座)를 그분에게 드려야 한다.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해야 한다. 그에게 간구해야 한다. 그에게 소망을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야 진정한 신앙인이 되고, 구원을 받을 것이며, 신령한 복에 동참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