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하는 개고생. // 황우 목사 백낙은.
올여름은 다른 해보다 조금 더 더웠던 여름인 것 같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영덕이 37도를 넘었고 포항지역도 찜통이긴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 가까이에는 크고 작은 계곡들이 많이 있다. 상옥계곡, 옥계계곡. 보경사 계곡 등등이 있으며, 그리고 월포 해수욕장, 칠포 해수욕장등이 있어 언제나 가고 싶으면 1~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아주 많이 더울 때 집사람을 보고 계곡이나 갈까 하고 물어 보았지만 무엇 하려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대답만 돌아왔다. 에어컨 시원하게 해 놓고 집에 있는 게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양광을 설치했기 때문에 전기료 걱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일피일 하다가 피서라는 것 한 번 가지 못하고 8월도 하순에 이른 것이다.
입추, 말복, 처서까지 지나고 보니 이제는 아침저녁으로는 조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계속 되고 있다. 조금은 따분한 생각이 들어 어떻게 하면 기분풀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난 월요일(24일)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B라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A와 C 두 친구 내외가 지금 죽변에 가 있는데 고기를 많이 잡았으니 회를 먹으러 오란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아내와 의논한 후 바닷가에서 하룻밤 자고 올 량으로 텐트와 옷가지를 챙겨 길을 나섰다. 우리 집에서는 울진 죽변까지는 두어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올해 휴가철이 거의 다 지난 시기였기 때문에 도로는 한산했다. 차를 신나게 몰아 목적지에 도달하니 모두 넷 가정 여덟 명이 함께 모인 것이다. 그 친구들이 어제 와서 잡은 고기로 회를 처서 배불리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저녁에도 매운탕을 끓여 맛있게 먹었는데 문제는 숙박이었다. 태풍 고니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야영을 하기가 곤란했다. 그래서 팬션으로 갈까 찜질방으로 갈까를 논의 하다가 해수찜질방으로 가기로 정했다.
해수찜질방은 지하 935m 청정 자하암반수의 맑고 깨끗한 알카리성 염화물 온천수로 수백 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현대적 시설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상열 하냉(上熱下冷)의 체질로 변하여, 발은 차갑고 상체는 더워 땀이 나는 체질이 되었다. 그래서 큰 수건 하나를 빌려 발을 감쌌지만, 더위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여기저기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잠을 이뤄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찜질방에는 수십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관광객도 있어 보였지만, 막노동을 하는 장정들도 있어 보였다. 그들이 코를 고는 것은 물론, 낮에 얼마나 피곤했는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게 중에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로 막노동에 내몰린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바닥에 깔고 잠을 자는 개인용 깔개 매트도 비위생적이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깔았던 것이며, 별의 별 사람들의 땀이 밴 것이라는 생각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았다.
집에서는 여왕 대접을 받으며 생활하던 여인들도 같은 처지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세 시를 넘기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잠 못 이루는 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잔혹한 고문과도 같은 시간이다. 이불도 없이 잠을 자는 다른 사람들도 새벽녘이 되어서 추우니까 깔개 매트 하나는 깔고 하나는 덮고 잠을 자고 있었다. 왜 모두 집을 나와 이 고생을 하는 것일까? 그래도 휴양이며 휴가를 즐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된 말로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런대로 하룻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어 찜질방을 뛰쳐나와 보니 태풍이 가까이 왔는지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일찍 서둘러 귀가를 하는 중 망향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집에 도착하고 보니 평안한 우리 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도 별걱정 없이 잠들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아내가 고추를 조금 따고 부추도 뜯어다가 고추전을 부쳐 배불리 먹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이른 저녁식사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이 되도록 꿈 한 번 없이 단잠을 잤다. 이제 사서 하는 개고생은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다져본다. (2015년 8월 26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