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병상일기 중에서. [2019년 5월 1일(수)]
어젯밤에는 큰 딸이 엄마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방에서 편하게 잤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피곤하다. 아침이 되어 큰딸도 일하러 나가고, 요양보호사마저 오늘이 근로자의 날이라고 나오지 않아 환자는 오롯이 내 당당이 되고 말았다.
하루에 세끼 밥을 챙겨 먹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세 번 30분씩 방안 운동을 시키고, 또 하루에 두 번 휠체어를 태워 약 30분씩 집 안팎을 도는 것이 나의 일과다. 그런데 오늘은 아내가 많이 피곤해 하는 것 같아 방안운동만 시키고, 휠체어를 태우진 않았다.
저녁때가 되어 밥통을 보니 밥이 조금밖에 없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카레라이스를 해먹기로 했다. 찾아보니 당근은 없고, 고기와 양파, 그리고 감자를 넣고 식용유에 볶은 다음 카레를 넣어 끓였다. 끓이면서도 몇 번이나 맛을 보았지만, 아내가 만들어 주던 그 맛이 아니다.
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아내를 들여다보면서 “여보! 오늘 카레를 끓였는데 당신이 해 줄 때 그 맛이 안 나네!”라고 말하는데 또 울컥해서 눈물이 난다. 아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아내가 모처럼 눈을 떠서 빨간 내 눈알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눈치다. 듣기는 하지만 말은 못하는 아내의 가슴은 얼마나 아플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으로서 아픈 아내에게 못할 짓이 또 하나있다. 가래를 뽑아내기 위해 뚫어 놓은 목구멍에 2~30cm나 되는 고무관을 찔러 넣어야 하는 아픔이다. 목의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석션(suction)을 해야 하는데 서로가 못할 짓이다. 짧은 1~2분 동안이지만 아내는 그 동안 숨을 쉬지 못하고, 기침만 해대는 고문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가씀이 찢어지듯 아프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집안은 더 적막강산이 된다. 대지가 700평이나 되고, 집도 방이 넷이나 되는 큰 집이고, 덩그마니 빈 마사(馬舍)도 있고, 황토방도 있고, 정자도 있으며, 연못도 있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이런 큰 집이 오히려 나를 슬프게 한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텅 빈 집은 외로운 산장이요, 고독한 섬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개가 짖어서 행여나 누가 오는가 하고 내다보지만, 휑하니 뚫린 가슴 한가운데로 바람만 스쳐가고, 이 집에 아내와 단 둘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외로움이 소름처럼 돋는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치며 깜짝 놀랐다. 목사라는 사람이 일평생 내 등 뒤에서 나를 돕고 계시는 주님이 서 계심을 잊어버린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실 손님 기다리다가 이미 와 계시는 손님을 섭섭하게 한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보인다.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아내에게 “여보! 우리 걱정하지 말자! 우리 등 뒤에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이 계시잖아!”라고 속삭였다. 이 말은 아내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격려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렇게 또 한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