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렐루야!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아내도 위기를 넘겼고, 저도 몇 번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저와 아내를 위해서 기도로, 또는 물심양면으로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미국에 있는 친지들이 내 소식을 알려고 페북이나 블로그에 들어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필을 들었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다 올릴 수는 없고 특정적인 날의 글만 올리려고 하오니 더울 큰 격려와 성원 보내 주시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 2019년 9월 8일(일) (아내가 쓰러진지 1년이 되는 날)
오늘은 아내가 쓰러진지 1년이 되는 날이고 주일이다. 그래서 욥기서 42:1~6절을 읽고 “눈으로 보는 신앙” 이라는 제목으로 큰딸과 셋이서 예배를 드렸다.
욥기서는 픽션이라는 학자도 있지만, 논픽션(nòn fíction) 즉 욥이라는 사람이 자기 신앙적 체험의 기록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욥의 고난의 기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상당한 기간 동안 체험한 신앙 간증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욥이 말하는 최종적인 결론은 모든 고난이나 질고, 환난이 분명히 기한이 있음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욥은 오늘 본문에서 자기의 무지와 불신앙의 고백한다. 욥이 처음에 큰 재난을 당했을 때는 아주 겸손했지만, 나중에 세 친구와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는 친구들에게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항거하는 몸짓을 취하기도 했고 교만했다.
욥은 그의 말년에 3절과 같은 고백을 한다.
(1)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했다.
(2) 스스로 알 수도 없고,
(3)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했다고 고백한다.
사실 욥기서는 대단히 난해한 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욥만이 그럴까? 아니다. 요즘도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욥과 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욥은 말년에 그 불확실한 믿음이 확실한 믿음으로 변한 것을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과거에는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눈으로 보는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 확신은
(1) 주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신 분.
(2)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분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욥은 재를 무릅쓰고 티끌 가운데서 하나님께 회개를 했던 것이다.
오늘이 아내가 쓰러진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욥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 못하실 일이 없으시며,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신, 욥의 하나님을 믿고 욥의 축복이 동참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절망적인 순간들도 있었지만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욥과 같이 더 나은 내일을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는 귀로만 듣던 진리를 눈으로 보는 확실한 믿음을 갖게 해 주시옵소서.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드리오며, 이레의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