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코배기에게 예()를 배우다. // 황우 목사 백낙은.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1929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빛나던 아세아 등촉(燈燭)’이란 시에서 우리 조선을 동방의 밝은 빛으로 묘사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는 시 말이다. 이런 시에 심취한 나는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다.

 

그런데 내가 오래전에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놈이라고 천시했던 일본을 처음 본 나의 소감은 톱니바퀴 같이 원활한 사회 같이 보였고, ()의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 사람이라고 급한 일이 없을까마는 우리처럼 뛰어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고, 질서가 정연하고 사람들은 공손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자녀를 외국에 보낼 기회가 있으면 일본부터 먼저 보내라는 말을 하곤 했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되어 양코배기라고 얕잡아보았던 미국을 방문하고부터 역시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우리나라가 과거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어디에 예()가 있고, 어디에 의()가 있으며, 도덕(道德)이 있는가 말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나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오래전에 엿 바꾸어 먹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예()가 무엇인가? 옛사람들은 그것을 인사(人事)라고 했다. 인사(人事)가 괜히 인사(人事)인가.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곧 인사(人事)라는 것을 한자(漢字) 속에 담아 놓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람의 도리인 인사(人事)를 망각하고 말았다. 으슥한 골목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먹한 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때 어느 쪽이라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人事)를 하면 곧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데 우리는 쭈뼛거리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보통이다.

한번은 내가 좁은 골목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자전거를 어중간하게 세워 두어서 자가용이 빠져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그 자전거를 길가로 치워 주었는데 자가용 운전자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냥 지나가고 마는 것이었다. 이것이 오늘 우리나라 예의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한적한 길에서나 호텔 복도에서 서로 마주치면 굿모닝이라고 하거나, “하이라는 인사를 한다. 더러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서툰 발음이긴 하지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나가다가 어깨가 서로 부딪거나 발뒤축을 밟아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서로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파돈 미”(pardon me) 또는 익스큐스 미”(excuse me)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배울 점이 여러 가지 있지만, 질서를 지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차례를 기다리기 위해 줄을 설 때면 앞사람과 밀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뒷사람에게 떠밀려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앞사람의 몸에 닿거나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차량 질서는 정말 배울만했다. 우선멈춤에선 꼭 차를 멈췄다가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 신호기가 없는 교차로에서 교행 할 때는 One By One 원칙을 지킨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보행자 우선이라는 사실이다. 신호기가 없는 건널목에 서 있으면 사람을 먼저 가도록 수신호를 한다.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교통도덕이라 여긴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부끄러운 사회가 되었으며, 그 원인이 무엇인가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가장 짧은 기간에 세계 10대 무역 강국이 되는 과정에서 물질적인 것만 보고 달리느라 그보다 더 귀한 정신적 유산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되면서부터 가정(家庭)의 소중함을 잊어버렸고 동시에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진데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손하게 인사를 잘해라. 자세를 곧게 해라.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거든 너도 먹어라. 쩝쩝하고 소리 내지 마라.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끼어들지 마라. 형제들끼리 우애해라. 친구하고는 사이좋게 지내라. 등등이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독방문화의 창궐로 가정이 와해되어 이런 기초적인 밥상머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현대 가정(家庭)은 가()는 있으나 정()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대화의 공간인 정() 즉 뜰이 없으므로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에 예()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의 명예를 되찾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가정(家庭)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가정을 되살릴 뿐만 아니라, 밥상머리 교육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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