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7월 21일(일)
오늘은 주일이다. 하박국 3:17~19절을 읽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얼마 전 TV를 보다가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자기는 하나님께 기도한 것마다 응답을 받았노라고 하면서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이 기도한 것마다 응답을 받는다면, 아마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산들이 이리 저리 날아다닐 것이요, 믿는 사람들만 성공하여 탄탄대로를 걷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다리 밑에서 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도 많은 기도를 응답받았다. 내가 열세 살 때 처음 예배당에 나가 “나 목사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20년 만에 그 기도가 응답되어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나열하고 싶지 않다. 어제의 기도의 응답이 오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사인 나로서도 응답을 받지 못한 기도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가 힘이 들 지경이다. 물론 내 기도가 뜨겁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무라면 할 말이 없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과학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중등학교 시절에는 훌륭한 웅변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응답을 받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국군 장성이 되고 싶어서 육군사관학교에 시험을 쳤지만 낙방했다. 제대를 한 다음 영동군에서 민주주의 순회강사를 하면서, 유달영 선생과 같이 세상을 바꿔놓을 유명한 강사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
청년시절에는 고 최무룡 선생과 같은 배우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최무룡 스타일까지 코스프래(cospre)를 하고 다녔지만 나는 배우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꼭 목사가 되지 않아도 돈 많은 장로가 되어 교회와 사회에 헌신하겠노라 기도했지만 장로가 되지 못했고, 가난한 목사가 되었다.
목회를 할 때에도 전국적으로 부흥회를 68회를 인도하면서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지 못했다. 교회를 부흥시켜 주시거나, 아니면 큰 교회를 시무하게 해 달라고도 기도했지만, 나는 항상 도시변두리 작은 교회들만 시무하는 목회자였다.
은퇴한 후에도 소 다섯 마리, 염소 20여 마리까지 키우면서 목장이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광우병 파동으로 망하고 말았다. 노후에 생계수단으로 승마장을 해 보겠다고 말을 두 마리 사서 타고 다니며, 5년간이나 힘써 보았지만 고가의 말이 폐사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자녀를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다. 아들하나 대를 이어 목회자 만들려고 기도하였지만 그 기도마저 응답받지 못했다. 딸들 셋도 모두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떤 면에서 세상에 내 놓을 것 없는 가장 초라한 목사일 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때 기도를 응답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한평생 목사로, 그리고 3류 정도이지만 글쟁이로, 영적인 치유자로, 일평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 때 그 때마다 딴 길로 가지 못하게 막아주셔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한길만 걷게 하신 것이라 생각하니 “하나님. 그 때 그렇게 하시기를 잘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풍부할 때나, 건강할 때, 형통할 때에만 감사하고, 기도가 척척 응답을 될 때만 감사한다면, 그것을 어찌 범사에 감사라 하겠는가?
건강만 감사한다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이며, 부요함만 감사한다면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주받은 사람들인가?
분명한 것은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다시 땅으로 떨어지듯,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가 우리에게 덕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 지, 철저한 검토와 결제를 거쳐, 우리에게 꼭 유익하고 복된 것으로 응답해 주시되, 한 시간도 이르거나 늦지 않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본문 하박국 3:17~19절 말씀처럼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을 지라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전천후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며, 내 즐거움과 기쁨의 근원이 물질이나 형통이 아닌,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점심 식사 후 딸들은 모두 가고 모처럼 날이 개였다. 서둘러 아내를 차에 태우고 월포 해변을 거처 다시 오도해변으로 갔다. 차창을 열고 바다를 바라보게 했으나 늘 보았던 전경이라 전과 같지 않은 반응이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림 같은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게 하고 싶은데, 가까이에는 조그만 유계저수지 밖에 없으니 안타갑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