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어도 돈 쓸 일 많다. // 황우 목사 백낙은.
며칠 전에 우리 부부가 백내장 수술을 하고 오는 길에 어중간한 시간이지만 식당에 들려 식사를 하려고 조그마한 시골 식당을 찾았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약 50대 정도 된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들과 조금 비낀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의 대화가 귀에 많이 거슬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대화 내용은 “인생이 70 정도 되면 돈 쓸 일 없다”는 지론이다. “그렇지! 그때 되면 손자들 용돈이나 줄 일 밖에 없지 뭐!”라고 서로 응수를 해 가면서, 서로 죽이 맞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이들은 일흔이 되면 호호백발이 되어 한 몸 움직이는 것도 어려울 줄 알지만 앞으로 100세 시대가 분명히 올 것인데 아직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이들의 대화는 내일 모래면 여든을 바라보는 우리 부부 앞에서 가관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늙은이들도 돈 쓸데 많다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목구멍까지 넘어오는 것을 참고 말았다. 집에 와서도 그 말이 생각나서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과연 돈 쓸 일이 없었던가를 되짚어 보았다.
나의 젊은 시절 40여년은 목회하는 일에 바빴고, 자식들 4남매 키우고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보내느라 옆 돌아볼 겨를도 없이 살았다. 65세에 은퇴를 하고 보니 돈 쓸 일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100세 인생인데 죽기만을 기다리고 그냥 놀고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우사도 짓고 소도 몇 마리 키워보았다.
그리고 멋진 취미생활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많은 돈이 드는 것은 하지 못하고 일흔 살에 우선 말을 한 마리 사서 키우면서 5년 정도를 탔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좀 더 좋은 말을 사고 싶었지만 교단에서 나오는 은급비 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안전하고 튼튼한 좋은 차도 타고 싶었으나 그것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10년이나 된 중고차를 사서 타는데 언제 고장이 날는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자녀들이라도 잘 살면 좋겠지만 자기들 살기도 바쁜 요즘 매번 자녀들에게 손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또 병원비도 쏠쏠하게 들어간다. 약국에서 약을 타가는 노인들을 보면 무슨 놈의 병이 그리도 많은지 약이 한 보따리씩이다. 우리 부부는 비교적 건강하지만 혈압 약을 먹어야 하고, 여기저기 신경통도 생긴다. 그래서 파스는 한 부대씩 사다 놓고 도배하듯 한다.
그리고 또 나는 대식가도 아니고 미식가도 아니지만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도 많다. 또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싶다. 젊을 때도 이스라엘이나 유럽, 그리고 동남아 등지를 여행했었지만, 70이 넘고 나서도 중국, 대만, 일본 등을 다녔고, 아내는 인도, 미국, 태국, 등지도 다녔다.
지난달에는 내 나이 일흔아홉에 아내와 함께 터키와 그리스 등지에 성지순례도 다녀오기도 했다.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많다. 아내는 두 번씩이나 다녀온 미국을 나는 한 번도 못 가서 꼭 다녀오고 싶고, 북유럽이나 소비에트 연방, 그리고 아프리카 등지도 여행하고 싶은데 건강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에 가지 못한다.
요즘도 여러 가지 취미생활도 하고 싶은데 여유가 없다. 우리 국악도 배우고 싶고 드럼도 배우고 싶고, 악기도 좀 배우고 싶다. 그래서 내 나이 일흔아홉이지만 우선 색소폰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으나 색소폰 가격이 또 만만치 않아 망설였다. 이를 안 막내 사위가 자기가 쓰던 것을 주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여간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일흔이 되기 전에는 눈코 뜰 새 없어 주변을 보지 못했지만 이제 주변이 보인다. 얼마나 많은 불우 이웃들이 있는가? 불치의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말 못 할 사정으로 그늘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특히 장애우 들의 손이 되어 주고 발이 되어 주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내가 나이 일흔다섯에 등단을 하고 보니 문단이라는 데도 보기와는 달리 자립을 못하고 있는듯하여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생각뿐이지 여유가 없다.
그뿐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 수억 명이나 된다. 인도나 아프리카, 중동 지방의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나도 어려운 처지지만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생각다 못해 인도에 있는 어린이에게 매달 조금씩 보내고는 있다. 하지만 미흡하여 부끄럽기 짝이 없다.
얼마 전에 내가 은퇴하신 목사님들 앞에서 설교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선배 목사님들 중에는 재산을 좀 가진 분이 있는데, 그 앞에서 외람되게도 “재물을 자식들에게 물려 줄 생각하지 마라. 자식들은 자기 복으로 사는 것이다. 죽기 전에 돈 다 쓰고 죽어야 한다.”라고 했다.
그렇다. 돈은 얼마든지 보람되게 잘 쓸 수 있는 길이 있다. 후대를 양육하는 장학재단 같은 교육기관 등에 기부할 수도 있고, 이 땅에 복음 전파와 내, 외국 선교를 위해 쓸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외친다. 일흔이 넘으면 돈 쓸 일이 더 많이 생긴다고! 젊은이들이여! 열심히 노력하여 일흔이 넘어서도 돈 잘 쓰는 멋진 인생이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 파이팅.
“절대 허송세월 하지 마라. 책을 읽든지, 쓰든지, 기도하든지, 명상하든지,
또는 공익을 위해 노력하든지, 항상 뭔가를 해라. “ - 토마스 아 켐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