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 다녀 가셨나보네. // 황우 목사 백낙은.
달포 넘게 집을 비웠더니
기별도 없던 임이 그새를 못 참고
다녀가신 발자국 여기저기 선명하다.
매화는 입덧을 시작했고
울타리 밑 양지쪽 원추리는
국을 끓이긴 너무 쇠어 버렸다.
겨우내 옷섶 꽁꽁 여몄던 동백은
옷고름 풀어헤친 가슴에
젖무덤 봉싯봉싯 잘도 부풀었다.
땅 짐 지고 엎드렸던 냉이마저
임 따라 가려는지 흰 돛대 달았고
삼동 초 장다리엔 황포돛대 달았네.
실성한 함박은 히죽히죽 웃기만하고
살구나무는 백발을 휘날리며
온 몸으로 살아 있음을 노래하누나.
치맛자락 잡는 요량(料量)으로
햇살담긴 쑥부쟁이 뜯어다가
구수한 쑥버무리 해먹어야겠다.
* 봉싯 : 소리 없이 예쁘장하게 조금 입을 벌리고 가볍게 웃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