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사는 것과 바르게 사는 것. / 황우 목사 백낙은(원)
많은 사람들이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럼 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잘 산다는 것은 “개 같은 짓을 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쓰고, 잘 놀며, 타인의 간섭 없이 제 멋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잘 산다는 말 속에는 물질적인 부요와 육체적인 만족이라는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그동안 잘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래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했다.
과연 우리 민족은 과거 일제 강점기나 해방 전후에 비기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그 때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잘 살고 있다고 하겠다.
2013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4000달러 세계 제 13위 경제 대국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배부른 돼지로서의 삶이 인간에게 과연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16일 오전 9시경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하여 온 국민들의 이목이 진도로 집중 되어 있다. 세월호 선장은 아무도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해놓고, 자기는 제일 먼저 탈출하여 생명을 보존했지만 수백 명의 학생들을 포함한 승객들은 사망을 했거나 실종 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선장의 처사에 대하여 손가락질 하고 욕을 하지만 이와 같은 결과는 미리 예견 된 일이 아니었던가 묻고 싶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문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교육은 잘 사는 법만을 강조 해왔다. 남을 짓밟고라도 1등하는 것을 가르쳐 왔다. 남이야 어떻게 되던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고방식과 그에 따른 1등 교육은 오늘의 참사를 가져오고 말았다. 우리 기성세대들이 지금까지 그러한 교육을 해 놓고 선장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묻고 싶다. 이런 경쟁위주 교육 방법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러한 세월호 선장과 같은 인물을 배출할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인간은 육체만으로 이루어진 동물이 아니다. 동물과 달리 영혼(靈魂)이 있는 동물이요,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만족만 위한다면 동물이지 인간은 아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라면 잘 살기보다는 바르게 잘 살아야 한다. 그럼 바르게 잘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자기를 통제하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가치(價値)있는 보람된 삶일 것이다.
이같이 바르게 산다는 말 속에는 형이상학적 의미가 다분히 포함 된 말이라 할 수 있다. 무저갱과 같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방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라 하겠다.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 침몰 사건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해드호가 승조원과 가족 모두 630명을 태우고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 130명은 부녀자와 아이들이었다. 도중에 암초에 배가 좌초되어 가라앉기 시작했다. 구명보트가 있기는 했으나 세척뿐, 한 척에 60명이 정원이었다. 부녀자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고 나니 아직도 자리가 조금 남아 있었다. 그 때 함장 시드니 세튼 대령은 군사들을 갑판위로 집합 시켰다.
"진정한 군인은 내 말을 들어라! 너희들이 바다에 뛰어내려 저 보트에 올라타면 대혼란이 일어나고 보트는 뒤집힌다. 우리는 국민을 지켜야할 군인이다. 지금 그 자리를 꼼짝 말고 지켜라! 전 부대 차렷 경례" 라고 명령했다.
함장 이하 전 장병들은 민간인이 탄 보트가 군함을 지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거수경례를 올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과연 472명의 군인 중 누구 하나도 보트의 빈자리를 향해 뛰어 내리지 않았다. 영국 해군의 명예를 지킨 채 마지막 축포를 쏘며 그들은 장렬히 순직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은 동물이긴 하되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욕망을 통제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바르게 사는 것이고 여기에 비로소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다시 재점검해야 할 것 같다. 요즘 정부에서는 규제가 곧 암이라고 하면서 규제를 완화 하겠다고 야단들 하지만, 규제를 완화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안전과 관계된 문제에서만큼은 더 엄격한 규제를 해야 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소 잃고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으면 또다시 그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민소득을 높이고 잘 사는 것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방법을 후대에게 교육하고 열심히 추구해야할 일임을 천명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