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세상이야! // 황우 목사 백낙은.
옛날 우리가 어릴 때는 잔병치레를 많이 했었다. 장질부사나 홍역 같은 무서운 돌림병도 많았지만, 말라리아나 속앓이, 그리고 눈병과 같은 병도 많았다. 지금이라면 병원에 한두 번 가면 나을 병이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으니 앓는 기간이 여간 긴 것이 아니었다.
홍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홍역이 동리를 한 번 지나가면 이 집 저 집에서 곡소리가 나곤 했다. 그래서 돌이 지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다가 홍역과 같은 돌림병이 지나가고 나면 그제야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른 동네는 잘 모르지만, 우리 동네는 홍역을 앓다가 죽은 아기들을 바로 장례 하지 않고 수장(樹葬)을 지냈다. 초등학교 옆 언덕에 아람 도리 참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그 참나무에 아기 시신을 천으로 싸서 올려놓은 것을 자주 보곤 했다. 그러다가 얼마의 기간이 지나면 땅에다가 묻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 특히 눈병을 많이 앓았다.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아무리 아파도 자연적으로 치료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항상 눈곱을 주절주절 매달고 다녔다.
눈병을 앓게 되면 할머니께서 나를 데리고 부엌 앞으로 가신다. 해가 돋는 것을 지켜보시다가, 해가 솟아오르면 그 해를 보고 바로 서게 하신 다음, 조왕신께 두 손을 모아 비신다. “우리 손자 낙원이가 눈병에 걸렸습니다. 조왕신이시여! 제발 이 눈병을 거두어 가 주소서”하고 말이다.
그다음 부엌칼을 가지고 오셔서 내가 선 자리에 표를 하고 나를 물러나게 한 다음 그 자리를 칼끝으로 이물질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판다. 그러면 거기서 십중팔구는 숯검정이 나오거나 다른 이물질이 나온다. 그 이물질을 제거하신 다음에 내 눈병이 다 나았음을 선포하신다. 그러면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또 다른 눈병이 있는데 눈 다래끼[안검염](眼瞼炎)이다. 눈에 다래끼가 생기면 먼저 속눈썹을 몇 개 뽑아서 그것을 가지고 한길로 나가신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납작한 돌로 고인돌처럼 비석을 세우고 그 속에 눈썹을 넣어 둔다. 만약 다른 사람이 길을 가다가 그 비석을 밟으면, 나는 눈병이 낫고 그 사람은 눈병이 걸린다는 것이다. 눈병이 곧 나았던 기억은 없지만 이런 처방들이 암시 효과나 최면작용이 있었던지 아픈 것이 다소 감소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며칠 전이다. 우리 부부가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젊은이 못지않게 먼 곳까지 잘 보인다. 그래도 치료차 안과에 들렀더니, 어쩌면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세 시간가량 걸려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대기실에서 할 일 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양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하고 수건으로 손목을 가린 한 사람을 데리고 교도관 두 사람이 안과를 찾아온 것이다.
수갑을 차고 있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죄를 저지른 죄수인 모양이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죄인이 되는 것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아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죄라는 것도 작정하고 지을 수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말다툼이나 장난으로 시작했던 것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때 더러 했던 과일 서리나 닭서리 등은 그때는 장난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수갑을 차야 하는 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예비 죄수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죄수 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교도관 두 사람을 동행시키기까지 국가가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치료를 해 주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여든이 가까운 늙은이 눈도 환하게 밝혀주는 것을 보니, 참 좋은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지마는 유럽의 어떤 국가에서는 “우리 교도소엔 죄수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정문에 흰 깃발을 꽂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36개의 교도소와 14개의 구치소, 그리고 육군 교도소와 민영교도소를 합하면 52개의 교도소가 있다. 앞으로 세 개의 교도소가 더 개소한다고 하니 그러면 55개의 교정시설이 되는 셈이다. 거기에 수용된 사람이 6만여 명에 이르고 더욱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좀 더 밝고 맑고 깨끗한 나라가 되어 55개의 교정시설에 죄수가 한 사람도 없음을 알리는 흰 깃발이 올라가는 날이 속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