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喜壽)에 찾아온 갱년기 현상. // 황우 목사 백낙은(원)
나이를 말하는 희수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드물 희(稀))자를 쓴 희수(稀壽)는 희년(稀年), 또는 고희(古稀)라는 말과 함께 나이 일흔을 일컫는 말이고, 기쁠 희(喜)자를 쓴 희수(喜壽)는 나이 일흔 일곱을 일컫는 말이다. 내 나이는 올해로 일흔을 일컫는 희수(稀壽)가 아니라, 일흔 일곱인 희수(喜壽)이다.
그런데 추석도 지나고 계절이 가을로 조금씩 바뀌게 될 즈음하여 이상하게도 뒤늦은 갱년기 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겠는가.
갱년기 현상이란 남녀 성 호르몬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데, 여성은 폐경기 전후에 오는 것이 정상이지만, 특히 남성은 30대 후반부터 남성호르몬 분비가 매년 1% 이상씩 감소하다가, 40~50대에 급격히 감소해 신체, 정신, 심리적 변화 등 복합적인 남성갱년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정설이다.
마냥 청춘인양 꾀 힘자랑까지 하고 살다가도 갑자기 어느 날부터 집중력 저하와 무력감, 불면증, 만성피로에 시달리면서 업무나 체력이 예전 같지 않고, 우울감과 자신감 상실, 외로움 같은 심리변화 등을 겪게 되는 것이 갱년기 증상이라 하겠다. 이런 남성갱년기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거스를 수 없는 ‘노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나이 일흔 일곱에 4-50대에서나 있을 법한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괜스레 불안해 지고 초조해질 뿐만 아니라, 갑자기 등골에 식은땀이 괴었다가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하여 가만히 있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인생을 다 살았다는 허무한 느낌까지 들곤 하는 것이었다.
신경 정신과에 들려 볼까? 어떤 약을 먹어 볼까? 이럴 때는 누구든 사람을 많이 만나서 수다를 떨면 좋다는데.. 하는 생각들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두세 시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은 줄은 알지만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도 별로 없고 있다고 해도 괜히 이 친구 저 친구 불러내어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떨기도 그래서 망설여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어떤 결론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누구에게도 내색을 하기가 두려웠고 창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것이 숲속 힐링(healing)이었다.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내 증상을 이야기 하고 그것을 치료해야겠으니 나를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다음에 조그마한 배낭 하나를 찾아 거기다가 성경 찬송은 물론 과일 등 간식을 챙겨 가지고 내가 잘 아는 계곡을 찾아 갔다.
그 계곡은 인적은 물론 물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하고 조용한 계곡이었다. 그 계곡 어디쯤에 바위 하나를 정하여 좌정하고 묵상도 하고 조용히 성경도 읽었다. 때로는 목청껏 찬송도 불렀다. 얼마를 지났을까? 그 계곡 물소리 따라 내 마음의 근심 걱정도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날에도 역시 그렇게 하다가 지루할 때에는 생각나는 대로 시도 읊어 보고, 명상을 하다가 너무 지루한 것 같아 주위를 다니면서 밤을 줍기 시작했다. 계곡에 떨어져 물에 잠긴 알밤들도 많았고, 산기슭으로 올라가니 여기 저기 알밤들이 제법 많아 알밤 줍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 다음날에는 아내와 함께 전적으로 알밤 줍기에 나섰더니 두 사람이 제법 대여섯 되는 됨직 하게 주웠다. 그러는 사이 마음은 조금씩 힐링이 되기 시작하고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지금까지의 그러한 갱년기 증상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음과 몸이 날아갈 듯 했으며 정상으로 돌아 온 것이었다. 자연의 치유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마음이 울적할 때는 슬며시 그 계곡을 찾아 나선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산과 들 계곡을 벗하며 살고 싶어진다.
이렇게 좋은 자연을 우리 인간들은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자꾸만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워 진다. 이 대 자연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조물주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며, 갱년기 현상을 겪는 모든 분들에게 대자연의 힐링(healing)을 권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