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를 보면서 구약의 에스더서 사건을 뇌리에 떠올리게 된다. 에스더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바벨론의 아하스에르 왕 시대에 왕의 총애를 받던 하만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하만은 위로는 왕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섬겨야 하는 자리였지만, 오히려 교만방자(驕慢放恣) 해져서 모든 사람의 숭앙을 받으려고 했다. 하만은 자기의 눈에 거슬리는 유대인 포로 모르드개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모르드개와 유대민족까지 몰살할 계획을 세웠다.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일 50큐빗(대략 25m)이나 되는 장대를 자기 집 마당에 세워 놓고 새벽부터 왕의 재가를 받으러 갔으나, 바로 그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전세가 완전히 뒤집히고 만다.
속절없이 죽게 된 하만은 에스더 왕후의 발 앞에 엎드려 생명을 구걸하려 했지만, 오히려 왕후를 겁탈하려 했다는 죄명까지 뒤집어쓰고, 결국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 세워둔 장대에 자기가 달려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이번에 12.3쿠데타를 보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까지 새기고 기고만장(氣高萬丈)했던 윤통이 내란의 수괴가 되어, 역사상 최초로 출국금지(出國禁止)는 물론 탄핵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풍전등화에 처지에 놓였다. 자기의 눈에 거슬리는 요인들을 매달려고 세워둔 장대에 자기가 달리게 되었고, 그 가족은 물론 그를 지지했던 수많은 사람까지 줄줄이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어떤 성인은 “역사의 수레바퀴는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철저히 부수어 가루로 만든다.”라는 말을 했다. 성서에서도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2:3)”라고 하셨다. 곪은 것은 언젠가 터지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이 혼탁한 역사의 강물 줄기를 따라 맥없이 함께 흘러갈 것인가? 아니면 그 강물 줄기를 거스를 것인가? 멀찍이 서서 구경만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